▲ 대연3동주민센터는 지난 22일 우영마을에서 시가 있는 마을 사업 준공을 기념한 시낭송회를 열었다.

대연3동 ‘시가 있는 마을 사업’추진
이주홍 김소월 작품 등 시화 55점
대문 옆에 걸려 “보석처럼 빛나다”

지난 22일 대서의 무더위가 절정인 넘긴 오후 6시경 대연3동(동장 오대현) 8통에 있는 우영마을을 찾았다. 찌는 듯한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시 낭송회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고 궁금증이 일어 견딜 수가 없어서 나선 걸음이다.

도시철도 경성대(부경대)역 2번 출구를 나와 대우(푸르지오)아파트와 경성대학 사이 길을 따라 300여 미터를 팥죽 같은 땀을 닦아가며 걸어 올라가니 도시고속도로 진입로인 고가도로가 나온다.

고가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황량한 공터다. 50미터 쯤 더 들어가니 존재할 것 같지도 않던 마을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입구에는 벌써 제법 많은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듯 웅성대고 있다. 여기가 바로 우영마을이다.

시 낭송회 시간이 일러 우선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본다. 맨 처음 이주홍 선생의 동시 ‘감꽃’이 눈에 띈다. 잿빛이 도는 스테인리스 강판에다 정성스레 쓴 글씨에 그림도 예사롭지 않다.

마을 안길을 따라 50개도 더 되는 시화가 집집마다 문패처럼 대문 옆에 걸려 있다. 김소월, 조지훈, 한용운, 서정주, 김영랑 같은 거목부터 도종환, 이해인, 나태주, 정호승 등 기라성 같은 시인이 다 모였다. 틈틈이 내 고장 출신들이 부산을 노래한 시들도 고개를 내민다. 그야말로 보물처럼 숨겨진 마을이 주옥같은 시들로 마치 보석처럼 빛난다.

우영마을은 시골의 여느 마을과 같이 한번 터를 잡고는 정에 묶여 차마 떠나지 못하고 오순도손 어울려 사는 도심 속의 섬처럼 동떨어진 한적한 곳이다. 이 ‘시가 있는 마을’ 사업은 올 3월초 대연3동에서 응모한 ‘주민자치회 지역 공동체 형성사업’에 선정되어 4백만 원의 사업비를 확보하고 대연3동 주민자치회에서 1백만 원을 투입하여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골목 갤러리에 전시할 시 55편은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심의, 선정하고, 시화(詩畵) 도안은 동명대의 노봉호 교수와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시각디자인팀의 재능기부로 만들어 이를 액자로 제작하는 과정을 거쳤다 한다.

시가 있는 마을 안내판이 깔끔하게 단장하고 골목 들머리에 서서 손님을 마중하는 가운데 마을 주민을 비롯하여 시·구의원, 자치위원 등 지역 유지들까지 다 모여 들자 부경대 통기타 동아리 ‘칼립소’의 연주와 함께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시 낭송회’가 시작된다.

오 동장은 인사말에서 면적이 작은 구에 버금가는 우리 동에 이런 외진 곳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아신 분도 있다면서 보시다시피 이곳은 화려한 네오사인도 흥청대는 유흥가도 없고, 「감천문화마을」이나, 초량동「이바구길」처럼 알려진 명소가 아닌 그저 김소월의 산유화처럼 저만치 혼자 피어 마치 보물찾기 하듯 꼭꼭 숨겨진 외톨이라고 우영마을을 소개한다.

그렇지만 맑은 날은 산 능선을 따라 달빛 선율이 흐르고, 밤하늘 은하수가 깨알처럼 쏟아지는 부산의 그 어느 곳보다 더 소담스럽고, 예스럽고, 정감이 넘치는 곳이라 문득 한편의 서정시 같은 마을이란 느낌을 살려 이 시 마을 사업을 구상하였다고. 그러면서 이 시들로 소박하고 소외된 마을이 작은 관심이라도 받을 수 있고, 주민들에게 조그마한 삶의 위안이 되기를 소망한다며 지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는 마음을 내보이기도 하였다.

본격적인 시 낭송은 송순임 전 시의원의 ‘세월의 길’, 남구문협 김달현의 ‘산이 날 에워싸고(박목월)’로 시작하여 초혼(김소월)-심점숙, 행복(유치환)-권미숙,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양성우)-노봉호,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이윤경, 청포도(이육사)-이복심으로 이어지며 간간이 울려 퍼지는 ‘칼립소’의 기타 선율과 어울려 한여름 밤의 꿈처럼 떠오르다 밤바다 같은 별빛 속으로 흩어져 갔다. 한순간 소박하고 단란하던 마을은 이처럼 느닷없이 시의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다시 시골다운 시끌벅적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황령산 산행이나 지나는 길에 이곳에 들러 서정시와 함께 한때나마 학창시절의 꿈과 명상에 잠겨 보는 것은 어떨까.

권채영(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