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민 공동집행위원장

지난 7월 2일 규모 5.0의 지진이 왔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아주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핵발전소를 걱정하는 시민과 시민단체는 중앙정부와 시정부에 지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그리고 원전가동을 중지하고, 신고리 5,6호기 건설계획 승인 취소를 촉구했다. 그리고 한달 뒤 규모 5.0과 5.8의 지진이 왔을 때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광단층, 양산단층 등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앞으로 발생할 가능한 지진의 규모가 회자되면서 두려움은 커졌다. 그리고 딱 일주일 뒤 규모 4.5의 지진이 찾아왔을 때, 확신을 시작했다. 어떤 과학적인 이론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일 뿐, 어떤 현상을 예측하지는 못한다는 당연한 회의를 하게 되었다. 지진은 이제
일상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진으로 안전하다는 옛 교과서의 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부산, 울산, 경주는 인접해있다. 이 곳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은 신고리 5,6호기를 합치면 16개가 된다. 고리, 신고리 원전만 하더라도 10개가 밀집해 있는 세계최대의 원전밀집지역이다. 심지어 30km 이내의 인구밀집은 380만명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신고리 원전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지만, 불과 진도 7.0에 내진설계가 되어있다. 진도 7.0이면 이 지역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지진의 크기라고 지적해왔다. 어떤 학자들은 9.0까지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정부와 한수원은 7.0의 지진은 1만년에 한번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비용 등 측면에서 현실성이 없는 지적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논란이 있다면 최악의 경우를 준비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 지역에서 8.3 규모의 지진까지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은폐했다는 경악할만한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티의 경우 7.0 지진으로 30만명이 사망했다. 부산은 지진에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만큼 더 무서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위험한 것은 원전이다.

원전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가? 단연코 안전하지 않다. 이 지역에 7.0 이상의 지진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 없다. 그리고 7.0에 못미치는 지진이 온다면 어떨까. 고리 1호기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아무리 튼튼한 건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노후하게 되고, 권투에서 잽을 맞고도 다운되듯이 계속되는 충격 앞에 온전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원전 중에 오래된 것들은 진도 6.5정도만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한곳에서 사고가 나면 원전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대형 참사가 예상된다.

이미 월성원전에서 원전을 수동으로 정지시키는 상황이 발생했고, 방사능인 삼중수소가 평소의 서른 배나 검출되기도 했다. 무서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더 무섭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준비정도이다. 세월호 이후 재난에 대처 시스템 보완의 요청이 있었으나, 여전히 그대로다. 그리고 후쿠시마 이후 원전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핵발전을 더욱 확대했다. 최근 잇따른 4번의 강진으로 지진에 대한 대비를 하자고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이 믿을만한 조치는 없다. 국가로터는 고작 ‘대피하라’ 혹은 ‘안전에 유의하라’는 문자를 지진발생 한참 뒤에 받은 시민들은 그저 생존배낭을 싸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단지 무능이 아니다. 정부는 지금 국민을 대상으로 생명을 담보로 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은폐하면서 원전을 짓고, 지진으로 인하 극한의 피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가동시키고, 재난에 대해 조처할 매뉴얼도 내놓지 못하는 정부는 지금 대량학살에 준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지진은 가깝고, 국가는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