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정승진은 우리 나라 몇 안되는 전통트로트 가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과 매력적인 보이스로 제2의 남인수라는 애칭을 듣고 있다.

세미트로트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전통트로트를 고집하며 외길을 걷고 있는 가수가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가수 겸 공연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승진 씨.

그는 우리나라 가요사에 큰 획을 그은 가요 황제 남인수의 음색과 창법을 쏙 빼닮아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특히,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 마는’이라고 시작하는 ‘애수의 소야곡’을 부를 때면 고 남인수 선생이 환생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다.

노래실력 뿐만 아니라 60년 가까이 전통 트로트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그의 발자취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작금의 트로트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편집자주〉

전통 트로트의 지킴이로 명성이 높은 가수 정승진을 만난 건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중순 저녁 사상구에 있는 한 음식점이었다.

꼰대(?)가 아닐까 걱정하며 가게문을 열었다. 기우였다. 정중히 취재진을 맞는 그는 모델을 연상케 하는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매력적이다.

간단한 인사말을 나눈 뒤 곧바로 언제부터 가수를 꿈꾸게 됐는지를 물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5~6살 때부터 노래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집에는 축음기와 전축이 있어 매일 남인수 선생님의 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철이 들 즈음 가수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바로 남인수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고부터였습니다”

남인수 가요제 최연소 대상 수상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이 고향인 정승진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서울 YMCA회관에서 열린 남인수 가요제에 참가했다.

처음 서 본 무대라 긴장도 많이 했지만 ‘애수의 소야곡’을 불러 당당히 대상을 차지했다. 당시 18세였던 그는 대회 최연소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10만원의 상금과 트로피를 받았다. 하지만 보수적인 부모님이 무서워 트로피는 지하방에 숨겨야 했다.
“당시 해병대에 근무하시던 아버지와 일제 강점기 여고를 나온 어머니는 매우 보수적이고 엄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막내아들이 딴따라 길을 걷는다고 생각조차 못하셨죠. 트로피를 7년이 지난 후에야 보여드릴 수 있었으니 알만하시겠죠?”

큰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가수의 꿈을 키워가던 정승진은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사실 정승진은 중·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머리가 좋았다. 이런 자식에게 거는 부모님의 기대는 상상 이상이었다. 당연히 변호사나 판사가 될 거라고 믿었다.
그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듯 경기중과 경복고를 거쳐 서울대에 무난히 입학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이 꽉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노래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입학한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밴드동아리 ‘샌드페블즈’였다. 기타로 오디션을 보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는 곧바로 종로에 있는 세운상가로 달려가 악기를 닦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여기서 일렉기타를 배웠다.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마침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4옥타브 넘나드는 가창력 ‘매력’

당시 밤무대로 유명했던 홀리데이, 역마차 등에서 MC 겸 기타연주자로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과 복고풍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그의 실력을 단번에 알아본 서라벌레코드사는 음반을 제안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도령 신바람 디스코 메들리’였다. 1985년 4월 무렵이었다. 음반은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20만 장이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월 평균 400만 원 이상의 수입이 생겼다. 차도 사고 무대에서 배우자도 만났다.

가수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어느 날 그는 아내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얘기를 듣게 된다.
“한참 가수로 활동하며 돈도 벌고 명성도 쌓아가던 중 같이 가수로 활동하던 아내가 가정의 미래를 위해 안정된 직업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얘길 하더라구요. 여러 가지로 심란했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뜻에 따라 1986년 경찰시험에 응시해 차석으로 합격, 부산시경 대공분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삶의 쳇바퀴 속에서 세월은 20년이 훌쩍 흘렀다. 동기들보다 앞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지만 마음은 늘 허전하기만 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이 목까지 차오를 때마다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며 억눌러 왔지만 공직생활 20년째 되던 2007년 미련 없이 퇴직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를 하는가 싶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행정심판사무소를 개소하게 됐다. 또 다시 5년의 세월이 흐른 2012년 그는 자신의 꿈과 끼를 더이상 감출 수 없었다.

마침 소속된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연예인협회) 부산지부에서 무대에 오를 기회를 자주 마련해 줬다. 전통 트로트을 하는 가수들이 많지 않아 그의 주가는 날로 뛰었다. 여러 기획사에서 음반을 내자는 건의가 쇄도했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전통트로트에 대한 고집 때문이었다. 대신 요양병원과 교도소 등 각종 복지시설에서 1000회가 넘는 봉사활동도 실시하며 나눔을 몸소 실천했다.

시대의 사회상 담은 전통트로트

그렇다면 가수 정승진이 말하는 전통 트로트란 무엇일까.

그는 우리나라 근대사라는 다소 생경한 대답을 내놓는다.
“트로트는 우리가락에 창가가 합쳐진 것으로 시대의 사회상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유행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트로트 유행가이며 유행가는 우리나라의 근대사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가요는 역사와 동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자들은 트롯이 일본의 엔카에서 유래됐다고 하는 데 저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스트롯 등 각종 가요경연대회를 통해 최근 유행하고 있는 세미 트로트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한다.
“요즘 핫한 세미 트로트는 다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 같아 아쉽습니다. 트롯이 여러 장르와 콜라보 하는 모습도 좋지만 마치 그것이 다인 냥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남인수, 현인 선생님들과 같은 분들이 부른 전통 트로트에 대한 관심도 함께할 때 우리나라 트로트의 장래가 밝다고 봅니다”

그는 요즘 전통트로트의 부활을 위한 음반제작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산사람들’이라는 타이틀곡으로 팬들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

‘부산사람들’ 음반 8월 제작

‘부산사람들’은 용두산과 부산항 등 부산의 명소는 물론 자갈치아줌마와 갈매기 등 부산을 상징하는 노랫말과 디스코풍의 신나는 리듬으로 대박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에 ‘서울찬가’가 있다면 부산에는 ‘부산사람들’이 있다는 이미지를 시민들에게 심어주고 싶습니다. 부산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은 노래가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전통 트로트 부활의 신호탄이 되길 희망합니다”

가수 정승진은 이밖에도 2~3곡을 더 취입해 부산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음반 취입을 앞둔 그는 요즘 설레이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대에서 팬들과 만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뜁니다. 한분의 관객이라도 저의 노래에 박수를 보내줄 때 그 희열은 가수 아니면 느끼지 못할 겁니다. 무엇보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노래를 통해 좋은 분들과 만나고 교류하는 것만큼 저에게 행복감을 전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기획사 설립 유튜브 제작 ‘제2 전성기’

가수 정승진은 뛰어난 가창력과 누구나 범접할 수 없는 보이스톤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 하고 있다,

세미 트로트에 식상한 팬들이 전통 트로트에 눈길을 돌리면서 그를 찾는 방송사와 기획사 관계자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 가요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가요무대’에서 남인수 선생의 곡을 불러 호평을 받았다. 가요 전문 유튜브 방송에서도 출연 섭외가 쇄도하고 있어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그는 또 ‘신바람 정기획’ 이라는 기획사를 설립하고 신인발굴에 나섰다. 아울러 연산로터리 부근에 스튜디오를 마련, 유튜브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르샤예술단 대표로 취임해 월 1회 이상 지역가수들과 공연을 가지며 코로나 19로 지친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전통 트로트 부활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요지의 대답을 내놓았다.
“우리 가요의 근간이며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한 전통 트로트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탤 각오입니다. 후진양성은 물론 다양한 행사 기획을 통해 전통 트로트의 참가치를 알리는 한편 이에 부합하는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위해 작사가로도 등록해 본격적으로 활동할 생각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다시 나온 거리는 짙은 어둠으로 한산하다.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작별인사를 고하는 가수 정승진은 전통트로트에 대한 관심과 홍보를 몇 번이고 당부한다.

전통트로트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노력이 대중가요의 메카 부산의 명성을 되찾는 또 하나의 단초가 되길 바라며 그의 건승을 빌어본다.

후텁지근한 여름밤 공기가 오늘따라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