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촌에서 많이 가꾸고 있는 삼색제비꽃은 흔히 팬지라고 하는데 '깊은 생각에 잠기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삼색제비꽃(Viola tricolor)은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하는 북유럽 원산의 한두해살이풀(월년초)로 늦가을에 파종하면 겨울을 넘기며 꽃을 피운다.

그리스 민화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처음에는 흰색이었는데 사랑의 신 주피터가 연모하는 한 시녀의 가슴에 화살을 쏜다는 것이 그만 실수로 길가에 있는 오랑캐꽃을 쏘고 말았는데 그 때 생긴 상처로 세 가지 색의 제비꽃이 생겨났다는 것.

흔히 '팬지'라고 하는데 팬지(Pansy)의 불어는 팡세. '사색(思索)'이란 뜻의 팡세(Pensée)는 여성명사로 '삼색제비꽃, 팬지'의 뜻이 있다.

번민에 잠긴 얼굴 비유

'깊은 생각에 잠기다'는 뜻의 팬지. 번민에 잠겨 있는 사람의 얼굴에 비유한 것으로 유럽에서 발렌타인데이에 선물하는 꽃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인간의 깊은 심연을 그려 낸 화가 앙리 루소는 어느 여인에게 팬지꽃의 그림과 함께 '당신에게 나의 모든 팬지꽃을 바칩니다'라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꽃을 자세히 보면 눈을 감고 턱을 길게 뽑은 파스칼 영감이 깊은 사색에 잠긴 듯하다. 초애원에서는 청자분에 심어, '파스칼'이란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다른 제비꽃들과 함께 삼색제비꽃은 먹을 수 있는 맛난 꽃으로, 허브꽃밥집에서 새큼하고 맛난 고명으로 얹혀 나온다.

귀한 손님이 오면 진달래처럼 찹쌀 익반죽으로 꽃누르미(화전)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한다.

줄기와 잎은 피를 맑게 해주는 정혈(淨血), 이뇨, 변을 원활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사하약, 관절염, 류마티스, 기관지염, 야뇨증, 습진, 여드름 치료에 사용한다. 호접제비꽃이라고도 하며, 우리 제비꽃이 외국에 가서 원예종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감이 가는 꽃이다.

다른 제비꽃과 함께, 가래를 삭이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혈압강하 불면증 변비 해독 춘곤증 야뇨증에 좋으며, 심장과 간의 열을 내리고 독성을 제거한다. 약리실험에서 억균 소염작용이 밝혀졌다.

이른 봄에는 나물로 먹어

옛날 화자(化子)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가난한 두 사람이 의형제를 맺어 살았는데 생인손을 앓게 되어 약방에 갔으나 돈이 없어 쫓겨나고, 양지쪽의 제비꽃을 찧어 바르고 달여 먹어 나았다는 전설이 있는 걸 보면 생인손에도 효력이 있는 모양이다.

깊고 그윽한 향기가 있어 향수를 만들기도 하고, 꽃차로 마시기도 한다. 이른 봄에는 나물로도 먹는다.

삼색제비꽃이 흔하지 않던 20년 전 지게골 문현여고 앞 야생화할머니 댁에서 이 꽃을 처음 보았다. 신기해 하는 내게 할머니는 집게손가락으로 한 포기를 파 주셨다.

그 후손이 시인과 문우들 집으로 시집을 가고, 지금껏 초애원을 지키고 있으니 후한 인심의 수명은 영원하다고 할까.

2년 전 KBS '세상의아침'에 초애원이 방영된 적이 있다. 그 때 안주인이 삼색제비꽃으로 화전을 만들어 교우들과 이웃 주민들을 대접하는 장면이 있었다. 삼색의 꽃잎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맛도 있어 모두들 좋아하였다. 드라이플라워로 코팅을 해서 갈피꽂이로 써도 좋다.

폴란드 국화로 유명

삼색제비꽃에는 애달픈 전설이 있다.

아주 먼 옛날 가난한 집에 아름답고 일 잘하는 처녀가 있었다. 시집갈 나이가 되자 처녀를 탐내는 집이 많았다.

부잣집의 오만함이 싫어 혼담을 거절하던 어느 날 동네 제일의 부잣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그 집 아들이 집안을 믿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주색에 노름을 즐기기로 유명하여 처녀가 거절하였으나 부모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시집간 다음 날부터 신랑이 방에서조차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자신은 밖으로 돌아다니며 술과 여자로 세월을 보냈다. 마침 이 집에는 착한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주인이 주는 밥보다 자기 힘으로 쥐를 잡아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이 고양이를 보는 신부의 마음은 미어지는 것 같았다.

자유로웠던 처녀 때가 생각나 무료함과 매질을 견디지 못한 신부는 차츰 야위어 결국 죽고 말았다. 그녀가 묻힌 무덤에는 눈이 채 녹지도 않은 초봄부터 보라 노랑 하양의 자그마한 꽃이 피어났다.

그러고 보니 꽃이 고양이 입과 수염처럼 생겨 귀엽다. 삼색제비꽃은 이른 봄부터 찬서리가 내리고 눈이 흩날리는 초겨울 만 가지 꽃이 모두 자취를 감추는 그 때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핀다.

시집가서 오랫동안 갇혀 햇빛마저 마음대로 구경하지 못 했던 그 영혼이 마음껏 세상을 구경하고자 그렇게 오래도록 피어 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한 꽃에 세 색이 들어 있어 시계나 도자기, 머그컵 등 일상품에 새겨져 사랑을 받는다. 폴란드에선 國花로 대접받고.

▲ 김종화 시인

글쓴이 김종화 시인은 남촌문학관장으로
남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간 자생식물연구가로 활동하며
들꽃정원 초애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흰금낭화 같은 그대」
「田園」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