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당동에 살고 있는 리취엔 씨가 시어머니 전정숙 씨와 대연동 못골시장을 찾아 제수용품을 고르고 있다.

어머니 수술비 마련위해
스무 살 때 무작정 한국행
3남매 낳고 기르며 정붙여

풍요로움을 즐기는 한가위가 다가오면서 전통시장, 백화점 등은 명절맞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국내 거주 외국인 200만 명 시대. 한국으로 시집 온 다문화 여성들도 추석 준비에 한창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이 느끼는 우리명절 추석은 어떤 걸까. 지난 18일 대연동 못골시장에서 시어머니와 손을 꼭 붙자고 함께 장을 보러 나온 리취엔 씨(34)를 만났다.

올해로 결혼 8년차에 접어든 그녀는 제수용품을 고르고 흥정을 하는 모습까지 영판 한국 아줌마다.
추석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니 '따뜻함'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중국 청도 출신의 리취엔 씨가 한국을 찾은 건 지난 2001년 겨울. 병환 중인 어머니 수술비 마련을 위해 스무살 어린나이에 경남 진해 산업단지를 찾아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가 한국에 와서 처음 맞은 추석의 느낌은 외로움과 소외감이었다.

"고향으로 모두들 떠나고 기숙사에서 중국인 친구와 중추절 음식인 병과를 만들어 먹으며 지낸 시절을 잊을 수 없어요. 돈을 아끼기 위해 고향도 찾지 못해 많이 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리취엔 씨가 우리의 추석문화를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의 남편을 만나 남구 용당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부터다.

"잡채부터 튀김, 전, 송편 등 음식을 너무 많이 하는 거예요. 손님이 정말 많이 오시는 줄 알았어요. 이날 만든 음식을 며칠 동안 먹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리취엔 씨에게 첫 추석은 많은 음식을 보며 놀란 기억과 혼자 음식을 다 만들어 내는 시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었다고 한다.  손님이 올 때마다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 중국 문화와는 상당히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올해로 아홉 번째 추석을 맞는 그녀에게 추석은 풍성하고 따뜻한 명절이 됐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덧 8살 큰딸과 7살 아들 그리고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막내까지 따뜻한 가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제 딸처럼 돌봐준 시어머니 전정숙 씨(64)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평소 두 아이를 돌봐주시는 것부터 한국에서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매년 추석마다 강원도로 떠나는 가족 여행도 시어머니의 배려에서 시작됐다.

"추석이 되면 남편 고향인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요. 미리 마련한 음식을 싸들고 떠나는 추석 여행은 일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됐어요"

리취엔 씨는 최근 남구청 공공근로 근무를 끝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에 있다. 중국어 교사를 꿈꾸며 먼 타국에서 또 다른 꿈을 완성시켜가고 있다.

가득찬 장바구니를 양손에 든 그녀의 모습에서 더불어 나누며 살아가는 우리 명절 문화에 대한 따뜻함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