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문해교육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남천동 ‘문해학교 한글교실’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자신의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출석하고 있다.

남천동 부산문해학교 한글교실
30명 수강생 주 2회 ‘형설지공’

어르신 힐링 프로그램 계획
다문화 여성 대상 문해교실도

“아들아 딸아! 연필을 잡으니까 마음이 콩딱콩딱 한다. 글을 배우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나는 내 마음을 길게 써서 남겨 놓고 가고 싶다. 서투르지만 처음 쓰는 편지구나 딸 넷 아들 하나 너희 내 자랑인데 잘 커줘서 고맙다고 전한다”

수영구 남천역 인근의 청출어람 국어전문학원.

지난 25일 오후 1시 무더워진 날씨를 뒤로 하고 이곳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밖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한글을 읽는 소리가 들리는데 대부분이 고령의 할머니들이다. 부산문해교육협회에서 열고 있는 부산문해학교 한글교실 풍경이다.

부산문해교육협회는 성인문해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교사 10인이 모여 타 지역에 비해 한글문해교실이 부족한 수영구에 설립한 비영리 단체다.

백광인 교장이 개인적으로 운영 중인 학원을 공간으로 내 놓았고 교재마련, 비품비 등 선생님들이 십시일반 돈과 재능을 모아 무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4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초급, 중급, 고급, 초등검정고시반 등 4개 반을 운영하고 있다.

반응은 뜨거웠다. 홈페이지를 개설하자 자녀들이 어머니를 위한 수강신청이 이어졌고 입소문이 나면서 어르신들까지 몰렸다. 홍보를 시작하자마자 30여명의 수강생들이 가득 찼다.

김두선 교감은 "한글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교실문을 열었지만 이 정도로 많은 분들이 우리 주변에 계신지 새삼 놀랐다"며 "아직은 시작단계라 더 많은 인원을 받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다"고 전한다.

특히 남천역 4번 출구와 인접한 교통편 때문에 수영구 뿐만 아니라 덕천동, 장산, 사직동 등 부산 전역에서 배움을 찾아 어르신들이 몰려들고 있다.

▲ 자원봉사에 나선 문해학교 교사들이 모여 알찬 수업 진행을 위한 다짐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수업을 듣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60~80대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여자라는 이유로 한글을 배우지 못하는 등 다양한 사연들이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가정형편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한 김일악(75 수정동)어르신은 낮에 열리는 수업 참여를 위해 청소일까지 그만두고 교실을 찾고 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통해 올해 꼭 졸업장을 받는 것이 목표다.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안 보내 주더라고. 자식들 대학원까지 다 보내고 이제야 이곳을 찾게 됐어. 지금도 글을 쓸 때 마다 눈물이 계속나"

문막래(71 민락동) 어르신은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한으로 아들, 딸 모두를 대학원 까지 보내며 뒷바라지 했다.

백순보(73 대연동) 어르신은 어릴적 다리가 불편해 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우리 집안이 나 빼고는 대학도 마치고 판사 검사 출신들이 많아. 지금까지 마음에 품고 온 한이 얼마야. 이번에야 말로 독하게 마음 먹고 공부를 하러 왔어"

백 어르신은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시작으로 대학까지 가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산문해학교 한글교실은 어르신들의 마음을 힐링 시켜줄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 할 계획이다.

상반기 성인문해학습자 편지쓰기 대회, 추억 소풍을 시작으로 시화전, 어르신 한 풀이 말하기 대회, 구연동화 대회 등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백광인 교장은 "어르신들이 수험생 못지 않은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있어 교사들도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며 "앞으로 초등학교 뿐만 아니라 중등반 검정고시, 다문화여성한글교실 등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며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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