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흥수 소장이 새해 떠오르는 해를 가리키며 자신의 소망을 밝히고 있다.

오륙도는 해양도시 부산의 상징이다. 그리고 국가지정 명승지다. 국가지정 명승지는 부산에 두 군데뿐. 영도 태종대와 여기 오륙도다. 그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오륙도에는 사람이 지키는 등대가 있다. 등대를 지키는 사람은 모두 3명. 2명은 4박5일 근무하고 1명은 2박3일 쉬는 식으로 교대근무 한다.

항로표지관리원. 등대를 지키는 사람 직책이다. 원래는 등대지기라고 불렀는데 ‘없어 보인다’고 1988년 항로표지관리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하지만 등대지기란 호칭이 인간적이고 친밀하다.

오륙도 등대를 대표하는 등대지기는 김흥수(46) 소장. 오륙도신문은 신문 창간을 기념해 김 소장을 만나보았다. 김 소장 뒤로 새해 첫날 첫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김 소장을 만나러 가는 길. 그를 만나려면 오륙도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야 한다. 유람선 승객은 거의 대부분 낚시꾼이다. 새해 첫날은 연휴 첫날이기도 해 선착장은 낚시꾼들로 북적댔다.

오전 7시 시동을 건 유람선 성조2호가 가장 먼저 닿은 곳은 일자방파제. 여기서 승객 대부분을 내린 유람선은 방향을 틀어 오륙도 등대섬으로 향했다.

오륙도 다섯 섬 여섯 섬은 섬마다 이름이 있다. 등대가 있는 섬이 등대섬이다. 1937년 11월 등대가 들어서기 전에는 밭처럼 평평하대서 밭섬으로 불렀다.

날씨, 등대지기의 최대 관심사

등대섬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등대 사무실이 나온다. 김흥수 소장이 나와서 반갑게 맞아 준다. 등대지기 가장 큰 관심사는 날씨. 가쁜 숨을 몰아쉬는 취재진에게 건네는 첫 인사 역시 날씨가 테마였다.

“어제는 날씨가 추워 오전에 배가 뜨지 않았는데 오늘은 파도가 잔잔하고 기온도 따뜻해 다행입니다”

새해 소망을 물었다. 대답은 평범했지만 25년 베테랑 등대지기다웠다.

“가족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산항을 오가는 배들이 올해도 안전하게 운항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소장 첫 근무지는 군산 격렬비열도 등대. 서해 끝에 있는 등대다. 참고로 남해 끝 등대는 마라도 등대, 동해 끝 등대는 독도 등대다.

3개월간 무인도에 갇혀 지내기도

격렬비열도 이후 오륙도와, 가덕도, 영도 등대 3곳을 모두 지켜 온 부산바다의 파수꾼이다. 등대는 사람이 지키는 유인등대와 사람이 지키지 않는 무인등대로 나눈다.

부산에 있는 유인등대는 앞에 든 세 곳. 세상 모든 유인등대는 등탑이 흰 색이라서 세 등대 모두 희다.
김 소장이 등대지기 신참시절 경험담을 들려준다.

"두 명이서 두 달씩 근무하는데 바다 상황이 안 좋으면 석 달이나 섬에 갇혀 지내기 일쑤였습니다. 한 달 한 번 식료품을 날라주던 표지선도 기상악화로 도착이 미뤄지면 음식 절반은 상해 있었죠."

격렬비열도 유인등대는 "중국에서 우는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할 정도로 우리나라 최서단에 위치한 무인도다. 음식이 부족해 직접 밭을 일구는 일은 등대지기의 또 다른 업무 중 하나였다.

군산 옹도에 근무할 당시 노부부를 구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는 소형 선박을 발견해 구조한 것이다. 노부부가 고맙다며 잡아준 손바닥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등대지기는 해양항만청 소속으로 60세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다. 과거에 비해 근무여건이 매우 호전되었다. 주변이 관광지가 되면서 각광받는 등대도 적잖다. 그래도 바다는 방심할 수 없다는 게 김 소장 지론이다.

2003년 매미태풍 때는 등대 3층까지 파도가 들이닥쳐 사무실이 물바다가 되는가하면 인근 무인등대는 거의 무용지물이 될 만큼 피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파도로 섬 전체가 흔들린다면 믿어지세요”

지지난해 여름에도 태풍이 연이어 들이닥쳐 배가 뜨지 않는 바람에 그와 동료 등대지기들은 보름가까이 섬에서 지냈다. 4박5일 근무가 물 건너 간 것이다. 거센 파도가 암벽을 때리고 등탑까지 튀어오를 정도가 되면 등대섬 전체가 흔들리는 게 감지된다. 두려움과 함께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섬 오륙도

그래도 바다 지킴이로서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부산항은 국내 수출 물동량 70%를 차지합니다. 우리나라 산업을 이끌 선박이 무사히 부산항으로 입·출항 할 수 있도록 일조한 자부심이 큽니다.”

지금도 대형 선박들이 무사히 등대를 지나쳐 갈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 예전에는 낚시꾼이 주로 찾던 오륙도 등대지만 이기대 둘레길이 만들어진 후부터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겨울철은 뜸하지만 여름 주말에는 하루 200~300명이 등대를 방문한다. 등대 내부에 마련된 우리나라 주요등대 사진 전시실과 전망대 안내도 주요업무 중 하나가 됐다.

등대지기로서 각별히 자랑하고 싶은 건 없을까. 등대지기로서의 특권은 무엇보다 매일 아침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고 김 소장은 단언한다.

“제가 근무해 본 곳 중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 오륙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말 그대로 장관입니다. 사실 새해라는 의미보다는 근무하는 매일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 감회가 새롭고 가슴이 벅찹니다.”

등대에 도착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저 멀리 수평선이 불그스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새해 첫날 첫 해가 얼마나 뜨거운지 수평선 물결이 팔팔 끓을 것만 같았다. 눈빛도 마음 빛도 바다를 닮아서 이미 바다가 된 사람, 등대지기 김흥수 소장. 붉고 뜨거운 해를 배경으로 선 그를 쳐다보는게 눈이 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