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상

지난 10월은 전국이 크고 작은 축제로 들썩였다.

부산도 문화의 계절 가을을 맞아 부산국제영화제와 불꽃축제 등이 열렸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았다. 특히 독립성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앓았던 부산국제영화제는 김빠진 사이다 마냥 재미없이 끝났다. 20년 동안 쌓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부산시민 은 가만히 지켜봐야만 했다.

부산의 각 기초자치단체에서 앞 다퉈 개최한 지역축제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프로그램은 더 이상 주민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남구가 해마다 열고 있는 오륙도축제로 들어가 보자.

올해는 20주년을 맞아 명칭을 오륙도평화축제로 바꾸고 개최 장소도 남구의 변두리 중 변두리인 백운포에서 대연동 평화공원으로 변경해 치렀다. 세계 유일의 UN기념공원이 있는 지역의 특성을 살린 ‘평화’라는 명칭 추가는 상당한 일리가 있어 보였다. 여기에 예산도 예년의 두배가 넘는 2억여원을 투입해 공을 들였다는 얘기가 들린다. 뿐만 아니라 남구는 따로 열리던 국화축제와 평생학습박람회를 오륙도평화축제에 엎어 예산과 규모를 키우려고 애썼다.

그 결과 지난해에 비해 축제 참가 주민들은 상당히 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축제가 꽤 성공적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행사를 지켜본 주민들 사이에서는 예년과 달라진 게 뭐가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평화축제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평화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평화음악회와 어린이평화도서전, 평화스토리투어 등의 행사가 열렸지만 평화축제를 부각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일주일 후엔 같은 남구에서 축제가 하나 더 열렸다.

문현동 아시아공동체학교에서 세계귀신축제가 막이 올랐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 축제는 사흘 동안 1만 여 명을 모으는 기적을 이뤄냈다. 지난해에도 5천명을 불러 모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예산도 억소리 나지 않았다. 올해 귀신축제에 들어간 예산은 고작 2000만원. 부산의 여느 축제와 견줘도 가성비 갑이다.

귀신축제의 성공비결은 무얼까.

의외로 간단하다. 행사의 시작과 끝을 축제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도맡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축제 3개월여 전부터 기획과 홍보, 진행에 이르는 축제 전반에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박효석 교장은 아이들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축제는 당연히 또래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축제장이 항상 만원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올해 만들어진 체험관 8곳 모두 학생들이 직접 꾸몄다고 한다. 홍보를 위해서도 학생들이 귀신복장을 하고 몇 날 며칠 부산을 누볐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축제 당일부터 부산의 초·중·고교생들이 행사장을 찾아 그들만의 독특한 축제를 만들며 성황을 이뤘다.

박 교장은 귀신축제가 부산은 물론 우리나라와 세계를 대표하는 청소년축제로 자리매김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답이 있다. 수 억원의 예산을 쏟아 붇고도 먹튀 축제가 되기 십상인 부산 지역의 축제는 이제부터 철저하게 지역주민이 만들어가는 축제로 대전환을 꾀해야 할 것이다.

가족과 이웃이 1년간 틈틈이 준비해 일정한 시기에 축제를 연다면 주민들이 즐기는 진정한 지역축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일본의 마쓰리나 브라질의 삼바축제를 들먹이지 않고서도 남구 문현동 한 기슭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귀신축제에서 지역축제의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귀신축제에 답이 있다”는 말은 과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