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철훈 시인이 남구 고동골 어귀에 내건 시화액자를 가리키며 시가 있는 마을 가꾸기 사업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동네 담벼락에 시화액자 걸고
문현동 고동골 詩거리 조성

팍팍한 이웃의 삶 보듬고
도시인 감성 일깨우기 ‘보람’

자칫 메마르기 쉬운 도시인들의 감성을 일깨우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일대를 시가 있는 마을로 가꾸고 있는 노시인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지역 원로 문인으로 종합문예지 ‘문장21’을 발행하고 있는 최철훈(67) 시인이 바로 그 주인공.

최 시인은 지난달 초 문현동 자신의 집 담벼락에 시화액자를 붙였다.

지역 문인회 시화전을 위해 출품했던 액자를 방안에 두는 것보다 지나가는 이웃들이 보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이웃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길을 가다가 한동안 물끄러미 시를 감상하는 사람도 있고 시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행인들도 자주 목격됐다. 심지어 “우리 집에도 시화액자를 걸어달라”는 이웃들도 생겨났다.

최 시인은 순간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를 위해 시 거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역 문인들의 협조를 얻어 시화액자를 모았다. 이웃주민들도 자신의 집 담벼락을 내주며 시가 있는 동네 가꾸기에 동참했다. 순식간에 30가구 가까운 집에 16점의 작품이 내걸렸다.

주민들은 시화가 내걸린 100여 미터의 거리를 걸으며 한층 밝아진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최 시인의 마음은 마냥 뿌듯하다.

“60여 년을 문현동에 살아오면서 이웃을 위해 특별히 한 게 없어서 늘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들었습니다. 이번 시 거리 조성으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어 다행입니다”

시화액자 출연으로 작은 동네가 들썩이고 있다. 인근 주민들은 길거리를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는가 하면 자녀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 사진을 찍기도 하며 시거리 탄생을 축하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문화사각지대인 문현동 어귀에서 만나는 싯귀를 접하고 최 시인의 노고에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있다.

시화가 있는 거리를 도로명 주소에 따라 ‘고동골 시가 있는 거리’로 부르고 싶다는 최 시인은 앞으로 이 거리를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지역 문인들의 뜻을 모을 예정이다.

“감천문화마을이 벽화 등으로 관광객을 모으고 있는 만큼 우리 문현동 고동골을 시가 흐르는 동네로 만들어 주민들의 정서 함양은 물론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시 거리를 조성해 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지역 문인들에게 동참을 호소할 생각입니다”

최철훈 시인은 동네를 오가는 이웃들이 시나브로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서 고단함을 달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서민의 팍팍한 삶을 어루만져주는 것은 시밖에 없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국제적인 금융단지와 산동네가 함께하며 신구 조화를 이루고 있는 문현동 한 기슭에서 벌이고 있는 노 시인의 행복한 마을 가꾸기 운동이 결실을 맺기를 빌어본다. 

한편 최철훈 시인은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동의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 문예창작과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한국해양문학상과 오륙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부산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현재 계간 종합문예지 ‘문장21’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