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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두고 온 가족위해 돈 벌어야죠우암동서 옷수선 하는 탈북인 현경남 씨
서영태 기자  |  ord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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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6  1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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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여성 현경남 씨가 우암동 자신의 옷수선집에서 험난했던 탈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2014년 목숨 걸고 탈북 성공
옷수선 익히며 남한 생활 적응

남편 두 아들 생각하면 눈물만
가족 재회 세탁소 운영이 꿈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면 한시도 일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만날 그날을 생각하며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우암동에서 옷 수선업을 하고 있는 현경남(여 47) 씨는 북에 남편과 두 아들을 남겨두고 홀로 남한 행을 택한 탈북민이다.

여느 탈북민과 같이 그의 소원은 단 하나, 가족들을 자유의 품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경남 씨는 가족과 다시 만나는 날을 손꼽으며 밤낮없이 미싱을 밟고 있다.

지난 11일 그를 만나기 위해 우암동으로 향하는 길은 겨울바람이 매서웠다.

그의 일터는 세탁 체인점 한켠에 위치해 있었다. 작은 체구에 모자를 눌러 쓴 모습이 북에서 내려온 여자라고 느낄 수 없을 만큼 여리고 가냘프다.

함경북도 북청군이 고향인 경남 씨는 3년 전인 지난 2014년 1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10년 전 탈북 한 친언니의 끊임없는 권유로 자유를 꿈꿔왔던 그는 가족과 같이 북을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커 혈혈단신 남으로 향했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안내인(탈북 브로커)의 도움으로 고향땅을 빠져 나와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숨어 든 그는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한국에 안착할 수 있었다.

“고향인 함경남도에서 중국 국경 가까운 지점까지 천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초소를 피하기 위해 오로지 험한 산을 넘고 또 넘어야 했습니다. 천리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질 뻔 한 일도 많았고 살얼음이 언 두만강을 건널 때는 물에 빠져 죽을까봐 얼마나 맘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말 중간 중간 함경도 특유의 사투리를 써 가며 얘기하는 경남 씨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하나원에서 옷수선을 익힌 그는 퇴소 이후 김해의 한 공장에서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위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돈을 모았다.

사실 그는 정규교육을 마친 17살 때부터 남한의 옷수선업인 임가공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다. 사정으로 잠시 쉬기는 했지만 그의 감각은 전혀 녹슬지 않았고 남한에서도 통했다. 게다가 손자수까지 능하면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처음에는 조금 적응이 안됐던 것이 사실입니다. 북에는 청바지와 깊게 파진 옷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몸에 딱 붙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의 특성을 빨리 익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또 마음대로 늘어나는 스판 재질의 옷수선 기법을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경남 씨는 고된 공장생활을 접고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옷수선업에 뛰어들었다.

잘 아는 사람의 소개로 세탁체인점 업주를 만날 수 있었고 그의 배려로 새 삶을 얻게 됐다. 경남 씨는 새로운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하고 있다. 고가의 컴퓨터 자수기계를 익혀 자신만의 노하우로 손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경남 씨의 하루 일과는 일에서 시작해 일로 끝난다. 아침 9시에 나와 저녁 9시를 넘도록 옷감과 씨름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가족 생각이 들어 자다가도 뛰쳐나와 일을 할 정도다. 그래도 참지 못할 정도로 남편과 아들이 보고 싶을 때는 막내 아들이 휴대폰으로 보내온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저의 유일한 휴식은 둘째 아들이 안내인의 휴대폰으로 찍어 보낸 영상을 보는 것입니다. 남한의 된장과 같은 ‘토장’이라는 제목의 전래가요를 부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경남 씨는 남한에서 가장 어려웠을 때는 자신이 탈북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이 꽃제비(거지)가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다. 그래서 안내인에게 돈을 건네고 가족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가족이 무탈하다는 전갈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북에 있는 가족들도 경남 씨가 죽은 줄 알고 몇 년간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

모든 사실이 헛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남 씨는 안도의 한숨을 쉴 틈도 없이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서 가족을 데려와야 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었다.

그의 꿈은 가족을 다시 만나 이미 탈북한 언니, 남동생 가족들과 소규모 세탁공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남한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돈돈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어서 돈을 모아 남편과 두 아이와 오봇하게 사는 게 꿈입니다”

장윤정의 ‘초혼’을 좋아한다는 경남 씨는 생경하기만한 남한 땅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인아저씨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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