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훈

간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남녘의 화신(花信)을 몰고 왔나 보다. 마당가 묵은 매화 등걸에 연한 부리로 쪼아 두리번거리는 눈빛들이 싱그럽다. 단단한 껍질을 뚫고 촉을 틔운 싹을 보고 강철보다 강하다고 한 어느 시인의 시구가 생각나게 한다.

옳고 그름의 가치는 자신이 처한 현실과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보편적인 가치 기준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또 그것이 인정될 때 비로소 살맛 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하루 종일 책 속에 묻혀 컴퓨터와 씨름하는 필자의 생활을 돌아보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지공도사의 연륜에 이르다 보니 다시 돌아올 사계의 변화에도 담담해진다. 봄이 온다고 해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어찌 그것이 현실 도피의 핑계가 될 수 있는가? 겨울의 터널 속에 움츠리고 있던 천지 만물들이 저마다의 몸짓으로 향기를 밀어 올리는 봄인데. 울 너머 고개를 내미는 환한 웃음들이 그리도 정겨운데.

며칠 전 거제도를 다녀왔다. 부산의 상징이 오륙도라면 거제의 상징물은 거가대교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봄볕 아래 펼쳐진 거제도의 정경을 바라보며 문득 鷺山 이은상의 시 오륙도와 인생이 거제도 봄 바다에 물무늬를 그리며 출렁이고 있었다.

차창 밖 내다볼 땐
산도 나도 다 가더니
내려서 둘러보니
산은 없고 나만 왔네
다 두고
저만 가나니
인생인가 하노라
- 인생 전문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
흐리락 맑으락 하메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나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다라
오늘은 비속에 보메
더더구나 몰라라.
 
그 옛날 어느 분도
저 섬을 헤다 못해
헤던 손 내리고서
오륙도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
- 오륙도 전문

그렇다. ‘오륙도’와 ‘인생’ 이 시 두 편이 어찌 보면 다른 듯싶으면서도 같은 것이거늘, 오륙도를 제호로 하고 나 선 오륙도 신문 우리 남구의 보배로운 신문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역 저널의 역할은 열악한 지역 현실을 감안하면 그 비중은 뜻밖에 크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한 부분에도 소홀할 수 없다.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문턱을 밟고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 창간된 오륙도 신문, 왜 창간하는가? 라는 화두를 던진 노 시인의 우려 섞어 던진 애정 어린 한마디가 이 봄 따뜻한 훈풍이 되어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신문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시인·문장21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