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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나의 삶이자 발자취■파워인터뷰 / 가수 강운해
기획특집부  |  ord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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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22  12: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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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기업체 CEO 출신 강낙관 씨는 가수 강운해로 거듭나면서 제2의 인생 황금기를 맞고 있다.

소방시설관리업체 CEO 출신
일흔 앞두고 가수 데뷔 도전

2집 앨범 내고 인생 2막 열어
노래는 삶의 기쁨이자 행복

“노래는 내가 살아온 발자취이자 삶입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중견 기업체 대표가 가수로 활동하며 인생 2막을 열고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강낙관(73) 참조은이엔지 대표이사다. 그는 현재 기업체 CEO와 2집 가수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행복하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소방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퇴임한 그는 2005년 회사를 설립했다.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으로 사업체를 일궈 부산 굴지의 소방시설관리업체로 성장시켰다. 이후 전문소방공사업체로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성공한 CEO 반열에 들어섰다.

사업적으로 잘 나가던 그가 어느 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평생소원인 가수의 꿈을 펼치기 위해 음반을 취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곡가로 평가 받는 지인의 한마디 격려가 힘이 됐다.

“국내 트로트의 히트제조기라 불리는 박현진 작곡가님을 만난 게 저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목소리가 맑고 부드러워 트로트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말에 용기를 내 음반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나이를 떠난 사제지간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부인 김명희 여사와 서울대 출신의 아들과 딸은 든든한 후원군으로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2016년 1집 음반에는 ‘뚜버기 인행’과 ‘내친구’ 등 2곡을 실었고 이어 발매된 2집 음반에는 대표곡 ‘청춘아’를 담았다.

모든 노랫말은 직접 썼다. 자신이 걸어온 인생살이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전문 작사가에게 의뢰하려고도 했지만 박현진 선생님이 남 못지않은 작사 실력을 갖추고 있다며 제가 쓴 시를 가지고 곡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전문적으로 시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틈나는 대로 노랫말을 썼다. 대부분이 고향인 진주 금산면의 풍경을 노래하는 내용이거나 내가 걸어온 인생길을 뒤돌아보며 적은 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가사에 호응해 주셨습니다. 특히 고향분들이 많이 좋아라 합니다”
   
▲ 가수 강운해 /삽화 하소연

강 대표는 받은 곡을 입에 붙도록 연습에 연습을 더했다. 집이나 회사에서, 심지어 차 안에서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사실 “신인이 무슨 음반이냐”는 쓴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강 대표는 여기에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신과 회사를 알리기 위한 홍보용으로 음반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음반은 명함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진주향우회와 소방동호회 등의 모임 자리에서 음반을 선물로 전달하며 가수로서의 변신을 알렸다.

2집 가수가 활동하며 예명도 지었다. 강운해(姜雲海)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평소 ‘뭉게구름’을 좋아하는 그는 이름도 구름 雲, 바다 海로 지어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창원지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크고 작은 행사에 초청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노래를 불러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고 급기야 매주 수요일 방영되는 KBS 이야기마당 도전 꿈의 마당에 출연하는 기회까지 얻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노래와 얼굴이 알려지면서 지역축제 등 대중 행사에 초청되는 일이 많아졌다. 사업과 노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부산·경남 지역 요양시설 등에서 봉사활동도 꾸준히 이어갔다.

사실 이전에도 해운대에서 참조은예술문화협의회 전신인 다다문화예술협의회 회장을 5년간 맡으며 실력 있는 가수 발굴과 문화나눔 봉사를 통해 꾸준히 부산문화예술 살리기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왔었다.

강낙관 대표 아니 강운해 가수에게 있어 노래란 무엇일까?
그는 주저 없이 ‘삶의 기쁨’이라고 대답한다.

“사실 요즘이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합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불러주는 사람도 많고 노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요”

가수 강운해는 가끔 진주 금산면에서 쇠풀을 먹이며 노래를 부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개천예술제 콩쿨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한복을 입고 20리 길을 걸었던 자신의 17살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노래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산이고 들이고 어디서든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평생 노래를 부르는 게 소원이었던 저가 이제 어엿한 가수가 돼 무대에 오를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가수 강운해가 어느 가수보다 여유롭게 무대를 즐길 수 있는 비결에 대한 그의 생각은 명료하다.

“제가 편안하게 무대에 오르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안정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취미처럼 즐기다 보면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 행사장에서 만나는 젊은 후배가수들에게 충고를 합니다. 직업을 가진 후 무대에 오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친구들은 저보고 꼰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트로트보다는 발라드곡을 좋아한다는 가수 강운해는 작사가로서의 길도 모색하고 있다.

최근 후배가수의 음반작업을 도우며 숨겨진 그의 작사능력을 맘껏 펼치고 있는 것.

작사 노하우는 메모습관에 있다고 그는 얘기한다.

“평소 시쓰기를 좋아해 잠을 자다가도 습작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잠자리 옆에는 볼펜과 메모지를 항상 준비하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노랫말을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지요. 이렇게 습작한 노랫말들이 지금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가 강낙관에서 주목받는 가수 강운해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를 두고 지인들은 꼭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자신 역시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며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느 가수보다 노래에 대한 애정은 깊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일흔의 나이에 가수로 도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맘껏 부르고 후배 가수들이 성공하는 모습도 지켜보면서 안분지족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의 도전에 힘을 실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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