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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노래봉사 멈추지 않을래요■노래는 나의 인생/20년째 요양병원 찾고 있는 초서령 가수
김미애 기자  |  ord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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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6.20  22: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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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출신 초서령 가수는 노래봉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마음 따뜻한 노래꾼으로 유명하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 답게 하려한 무대의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초서령 가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수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아마도 ‘죽는 그 날까지 노래 부르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노래꾼들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노래를 부르며 봉사까지 할 수 있다면 가수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여기 노래 봉사를 펼치며 인생 2막을 멋지게 열고 있는 가수가 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깜찍발랄 가수 초서령이다.

그는 요즘 각종 공연활동을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로 지친 시민들의 심신을 달래주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주가를 한층 올리고 있다.

지난 2일에는 (사)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협회 부산지부가 주최한 문화예술한마당축제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지난 12일에는 (사)한국연예인총연합회 주최 시민을 위한 가요대행진 행사에 초청돼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20일에는 i-net방송 오프닝 순서에 참여해 팬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초서령은 또 지난해부터 배우고 있는 장구를 자신 특유의 음색과 조화를 이룬 공연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고시절 가수꿈 키우다

가수 초서령은 경남 하동 하심마을 출신이다. 본명은 손미옥.

흥룡초등학교 때부터 합창단 활동을 하며 어렴풋이나마 가수의 꿈을 꿀 수 있었다. 하동여고 재학시절에는 그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해 주위로부터 노래를 곧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노래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늘 흥얼거리며 다녔고 주위 친구들은 잘한다고 칭찬해줘 노래와 친구처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자연스럽게 리듬감과 박자감을 익힐 수 있었지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초서령은 노래 다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패션 관련 업체에 취직했다. 급속도로 산업화가 이뤄지던 지난 1970년대 말 부산 국제시장의 한 의상실에서 일을 시작하며 패션분야 최고 권위자가 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패션디자이너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시작했고 단골 손님들도 제법 늘었다.

하지만 백화점과 대형몰의 기성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의상실을 찾는 이들이 줄어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접어야 하는 아픔을 맞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던가.

초서령은 뜻밖에도 소방관리업체에 취직, 경리로서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 투박하고 험한 건설 현장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럴 때일수록 평소 즐겨부르던 노래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제가 작고 내성적인 편인데 처음 건설분야에서 일을 하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몰래 울기도 많이했어요. 그럴 때마다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노래를 불렀고 신기하게도 새로운 힘이 생겨났습니다”

요양병원서 봉사 실천

초서령이 가수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 부터다.

뜻있는 친구들과 노래봉사단을 꾸려 해운대와 동래구 등에 위치한 요양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문현동 지겟골복지관, 연제구제일요양병원, 해운대 명성요양병원, 온천장 신세계요양병원 등 거짓말 보태서 부산에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왔다.

전통트로트를 좋아해 가는 곳 마다 ‘처녀뱃사공’, ‘찔레꽃’ 등을 들려줬다.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제가 원래 오래된 우리전통 트로트를 좋아해 자주 부르곤 했습니다. 요양시설의 어르신들이 저희를 보고 연신 앵콜을 외치시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때 알았죠, 역시 전통가요가 최고라는 것을 말입니다”

초서령은 노래봉사에 쏠쏠한 재미를 느끼면서 자신의 평생 소원이었던 가수의 꿈을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갈매기예술단과 인연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래연습에 매달렸다. 어떨 때는 잠을 줄여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던가.

초서령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성량과 하이톤의 음색을 장착하게 됐다.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찾는 곳이 많아졌다. 요양병원은 물론 각종 공연에 초청돼 눈코뜰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노래란 내 인생의 전부’라는 초서령은 무대에 오르면 주현미의 곡을 불러 분위기를 압도한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가수는 바로 주현미입니다. 요즘 ‘내일가면 안되나’ 곡을 주로 부르고 있어요. 물론 애창곡은 진소리의 '사랑 바람'과 이수진의 ‘님이 좋아’이지만 주현미의 노래를 부를 때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가락장구 익히며 새로운 도전

가수 초서령은 또 다른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가락장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월요일은 제외한 일주일 내내 김광자 민요장구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최근에는 뜻맞는 지인들과 ‘칠공주 예삐들’이라는 장구예술단을 결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초서령은 기회가 되면 노래와 장구가 만나는 단독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장구를 배워보니 정말 매력적이고 건강에도 좋은 것 같아요. 장구를 잘 배우고 익혀 내 노래에 입힌다면 정말 괜찮은 퍼포먼스가 될 것 같습니다. 70살까지 멋지게 무대를 즐기려면 이 정도 수고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재밌게 보내고 있습니다”

음박제작 계획 제2도약 기대

초 가수는 다른 목표도 세웠다.

자신의 노래 인생을 담은 음반을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는 작곡가와 잦은 만남을 갖고 논의 중이다. 음반이 나오면 제일 먼저 봉사현장으로 달려가 어르신들에게 가장 먼저 선을 보일 예정이다.
“오늘의 저가 있기 까지는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님 아버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저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며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음반이 나오면 이분들과 함께 작은 파티라도 열고 싶습니다”

노래를 통해 봉사하며 인생의 보람을 찾고 있는 가수 초서령.

그는 일류가수 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받는 노래사랑꾼으로서 다시 출발선에 섰다.

고향인 흥룡초등학교와 하동여고 교정에서 미래의 꿈을 다잡았던 어린 초서령의 마음가짐으로 제2의 가수인생을 다짐하고 있는 그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벼워 보인다.
“잘 나가는 유명가수도 좋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통해 지역의 어르신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나눌 수 있는 것 만큼 저에게 소중한 것은 없을 겁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요양병원의 어머님 아버님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가수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싶습니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취재.공연문의:010-8838-4432

   
▲ 가락장구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초서령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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