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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보다 신뢰로 승부’ 지역 명품 양식당 일궈■오륙도가 만난 사람들/다이닝센 부산본점 백승헌 대표
하인상 선임기자  |  ord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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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27  14: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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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금융맨 백승헌 대표가 은퇴 후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패밀리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성공적인 인생 후반전을 펼치고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 2막을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60세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패밀리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꽃중년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다이닝센 부산 본점 백승헌 대표다.
백 대표는 30년 넘게 금융업에 종사하다 10년 전 다이닝센 부산본점을 이기대 초입에 개점해 지역의 대표적인 양식 맛집으로 키웠다. 그의 성공 비결은 “고객에게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서비스 한다”는 철학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생 후반전을 누구보다 멋지게 보내고 있는 백승헌 대표(66)를 만난 것은 촉촉이 비가 내리던 늦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잘 정돈된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바닥은 유리처럼 빛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이닝센 부산 본점은 4년 연속 식약처 위생등급 매우 우수업체로 선정된 청결한 음식점으로 유명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백 대표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하얀 얼굴빛과 깔끔한 옷매무새가 70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게 믿겨 지지 않는다.

간단히 차를 마시고 요즘 근황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코로나가 잦아들면서 지난해 10월까지 가족 단위 손님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바빴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부터 소비가 얼어붙으며 불경기가 계속 이어져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다행히도 요즘 들어 모임이 늘어나면서 단체 손님들이 업장을 찾아줘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연말 모임 예약도 하나둘 들어오면서 바쁜 나날을 보낼 것 같습니다”

배고프고 힘든 보릿고개 어린 시절
초량동 옛 공동묘지 근처에서 살아
어려운 환경 속 명문교 당당히 졸업

귀공자 같은 외모로 꽃길만 걸었을 듯한 백 대표의 지나온 삶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그 시절 대다수 또래들이 그랬듯이 배고프고 힘든 보릿고개 시절을 보냈다. 아니 그보다 더한 지난한 세월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1956년 원숭이띠인 백 대표의 고향은 부산 동구 수정동 74번지다. 그는 1.4 후퇴 때 피난 나온 고 백영옥 씨와 동래 출신의 고 정순이 씨 사이에 3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는 학업만큼은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았다. 중학교 입시 마지막 세대인 그는 당시 최고의 명문인 부산중학교에 당당히 합격해 부모님의 자랑이 됐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사실상 가장 역할을 했다.

어린 시절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중학교 3학년 시기에 겪은 어려움은 그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인사사고를 낸 아버지가 합의금이 없어 구치소에 있을 때 소년 백승헌은 앞이 캄캄할 만큼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해 아버지가 겨우 풀려날 수 있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 여기에 고등학교 진학을 놓고 한차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인문계를 가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부산상고(지금의 개성고)를 택하게 된다.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 진출해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을 따른 것이다.

그 시절 백 대표는 웃픈(?) 경험을 하게 된다.

고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와 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달세가 밀려 주인 할머니로부터 쫓겨난 것이다. 물어물어 찾아간 집은 말 그대로 움막이었다. 3평 남짓한 크기의 방에 네 식구가 겨우 누울 수 있는 월세 1000원짜리 집이었다. 세간살이라고는 석유곤로와 그릇 몇 개가 전부였다.

다행스럽게도 임시거처를 얻어 사는 모습을 딱하게 여긴 주민들이 두 동생을 송도 ‘소년의 집(현 부산알로이시오고)’에 들어갈 수 있도록 손을 썼다. 몸이 아픈 아버지는 근처 양로원으로 모셨다. 소년 백승헌도 동생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규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공동묘지 인근 연화동 움막집 같은 곳에 홀로 남겨진 그는 울음으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당장 생계가 걱정이었다.

공납금도 밀리기 일쑤여서 교무실에 자주 불려가곤 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과외수업을 시작했다. 그래도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도시락을 싸본 적이 없었다. 과외수업으로 받은 돈을 아껴 밀가루를 샀다. 아침저녁으로 석유곤로에 물을 끓여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반찬이라고는 간장이 전부였다.

돈이 조금씩 모이면서 건빵을 도시락에 넣어 등교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혼자 한적한 곳으로 나와 눈물 젖은 건빵을 먹어야 했다.

백승헌 대표는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얘기한다.
“공동묘지 근처 움막집이 있던 연화동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참 어렵고도 힘든 시기였습니다. 당장 먹고 자는 것이 문제였으니까요. 잘 곳이 없어 소 외양간에서 누워 잘 때 바라본 달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참 예민한 시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탈선할 수 있었지만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힘이 컸다.

고1 시절 동네 형의 인도로 우연히 찾게 된 삼일교회가 그의 안식처가 됐다. 이후 50년 넘게, 지금은 용호동 늘빛교회에 출석하며 은퇴 장로로 섬기고 있다.

부산상고 졸업 후 은행 바로 합격
특유의 근면‧성실로 ‘두터운 신망’
3년 연속 은행장상, 장관상도 받아


교회가 영적 안식을 안겨줬다면 첫 직장은 생활의 안정을 찾아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은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5년이 흐른 후 동아대학교 아간 영문과에 입학, 5년 만에 졸업하게 된다. 월급을 받으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발령 받는 첫날부터 남들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해 악착같이 부지런을 떨었다. 이를 지켜본 직장 상사들로부터 이쁨을 받았고 승승장구의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27사단을 전역하고 부산 광안리 합숙소에서 출‧퇴근을 이어갔다. 그리고 전국 200개 지점의 1만 명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친절 우수 사원으로 3년 연속 선정돼 은행장상을 받았다. 은행장상을 연거푸 세 번 받은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26세가 되던 해에는 노동부장관상도 받았다.

백 대표는 상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군 복무 시절에는 군단장 표창을 받았고 그 뒤 은행지점장 시절, 기획재정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덕분에 고속승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승진 가점이 쌓이면서 동기보다 훨씬 빨리 대리를 달았으며 급기야는 당시 최연소 지점장으로 추천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후 하나은행 해운대지점장, 부산지점장 등의 보직을 거친 후 기업 여신을 전담하는 울산기업금융센터장을 맡았다.

2007년에는 하나금융지주회사 자회사인 하나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영남본부장 전무이사의 자리에 오른 후 2011년 퇴직했다.

은퇴 후 패밀리레스토랑 다이닝센 운영
손수 청소 식약처 위생등급 매우 우수업체
3년 연속 부산시 지정 양식 맛집 키워

 

회사를 나온 후 인생 후반전에 대한 설계에 바로 들어갔다. 먼저 하고 실은 일을 하자고 마음 먹었다.

처음에는 택시운전을 생각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후배의 소개로 ‘다이닝센’과 인연을 맺게 됐다. 부산 인근의 모 대학에서 초빙교수 제의가 들어왔지만 좀 더 자유스러운 일을 하고 싶어 완곡하게 사의를 표했다.

본사에서 레시피만 제공하고 모든 식재료는 점주가 알아서 한다는 회사 지침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제대로만 한다면 여느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맛을 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백 대표는 다이닝센 새 점주를 대상으로 하는 한 달 간의 연수기간 동안 자신 인생의 또 다른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젊은 점주들 틈에서 특유의 근면함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다이닝센 부산본점의 미래 비전을 밝히는 자양분이 됐다.

2014년 6월 14일. 드디어 다이닝센 부산본점이 문을 열었다.

“제대로 하기만 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사장인 자신부터 설거지와 청소를 맡아 깨끗한 가게 환경을 만들어갔다.

그는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손님에게 제공한다”는 신념으로 노력에 노력을 기울여 10년 만에 지역 최고의 패밀리레스토랑으로 일궈냈다.

백 대표의 다이닝센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부산시 지정 양식 맛집으로 선정됐다. 에어부산의 협력 레스토랑으로도 뽑혔다. 그리고 2016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남구 모범음식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에는 백 대표의 부지런함도 있었고 한번 맛을 보면 단골손님이 되는 천상의 음식 맛도 한몫을 했다. 무엇보다 철저한 위생관리가 주효했다.

다이닝센의 업장은 ‘테이블 청소 4원칙’과 특수 바닥청소 등으로 하루종일 빛이 난다. 그 덕에 식약처로부터 위생등급 매우 우수 업소로 선정됐다. 올해 초에는 위생 관련 부산광역시장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사회 공헌 활동에도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극동방송 등 종교단체는 물론 남구드림스타트 등 복지시설에 식사권 기부를 6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 공로로 남구청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부인과의 특별한 사랑 잉꼬부부 소문
쓰러진 아내 위해 5년간 휠체어 끌어
사별 후에도 꿈속에서 자주 만나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따뜻한 원두커피가 나왔다. 쟁반 위에 올려진 커피잔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이 매우 독특하고 감각이 뛰어난 제품이었다.

눈치를 챘는지 백 대표는 “아내가 국제시장 근처 소위 깡통시장에서 산 것”이라고 귀띔했다.

부인 얘기를 더해달라는 요구에 그는 한층 상기된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내는 2년 6개월 전 지병으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서구적인 외모에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영어도 능통한 커리어우먼이었구요. 가게에 있는 대부분의 비품 중 아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컵 하나를 볼 때마다 아내가 너무 그립습니다”

부인 이야기가 나오자 부쩍 기운이 나는 모양이다.

백 대표는 노동부 장관상을 받으며 잘 나가던 26살 때 평생 반려자인 이명진 씨와 거래처 직원과 행원 사이로 만났다. 세련된 외모와 이국적인 미모의 소유자인 명진 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둘은 이듬해 백년가약을 맺었다.

대연동 부산공고 뒤편에 신접살림을 차린 이들 부부는 슬하에 딸 혜린 양을 두고 모범적인 가정을 꾸렸다. 주위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날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

부인 명진 씨는 다도 등에도 조예가 깊어 활발한 사회 활동을 이어갔고 백 대표의 내조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그렇게 평생 꽃길만 걸을 수 있을 것 같던 백 대표의 가정에 시련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어느 날이었다.

백 대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부인 명진 씨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진 것이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그는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먼저 사랑하는 아내의 재활을 위해 해운대 백병원 옆으로 거처를 옮겼다.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병원 물리치료는 물론 좋다는 약과 음식을 손수 챙겼다. 백 대표의 지극한 정성은 5년간 계속됐지만 아내 명진 씨는 2021년 3월 소천했다.

짝을 잃은 외기러기가 된 백 대표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아내 생각에 불면의 밤을 지새야 했다. 가게에 나와도 집에 있어도 아내의 체취가 느껴져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오기 시작했다. 백 대표는 사별한 지 2년 6개월 동안 너무나 많이 꿈속에서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생생한 꿈을 통해 그는 위로와 안정감을 찾았다.

백 대표는 꿈속에서 만난 아내와의 정황 등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노트 세 권 가득히 적혀 있는 글을 꺼내 볼 때면 늘 아내가 자신 곁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꿈속에서 만난 아내의 모습을 볼 때면 다시 살아난 것 같이 느껴질 만큼 너무나 생생합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와 함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백 대표는 이 같은 부인과의 호흡을 통해 고통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기일인 매월 11일이면 어김없이 고인의 묘소를 찾는다.

오랫동안 이어진 부인 얘기에 백 대표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 보였다. 그리고 고명딸에 대한 애정 표시도 잊지 않았다.

올해 40살인 딸 혜린 씨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재원으로 유명한 공조회사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 손자들도 그의 보물들이다.

 

또 다른 가족 양부모님 정신적 지주
청년 시절 교회에서 만나 인연 맺어
각별한 사랑과 애정으로 ‘평생 응원’

가족 얘기가 나오면서 백 대표는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분들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바로 양부모인 고 김광철 장로와 김정례 권사 두 분 얘기였다.

배고프고 서러움이 많았던 시절 교회에서 만난 양아버지 고 김광철 씨는 지역에서 유명한 한의원을 운영하며 덕망이 높은 교회 장로였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게 생활하고 있는 청년 백승헌을 눈여겨보다 친아들처럼 챙기기 시작했다. 이후 양부모님들은 그의 대학 진학과 결혼 등 대소사를 손수 챙기며 친자식 못지않게 애정을 쏟았다.

8년 전 양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비석에 백 대표 부부와 딸의 이름을 새겨 넣을 만큼 각별한 사랑을 보여줬다.

노령의 양어머니 김정례 여사는 지금도 백 대표 가게 근처 아파트에 살며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인생 2막 성공 비결 3계명 제시
하고 싶은 일 하고 신뢰를 쌓아라
옳은 일 지속하면 반드시 인정받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가게 안으로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소 분주함 속에서 인터뷰를 끝내기 위해 질문을 이어갔다.

은퇴 후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열 수 있는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하자 몇 가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3계명을 알려줬다.

우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강조했다. 둘째 요식업을 한다면 “음식을 판다고 생각하지 말고 손님들에게 신뢰를 제공한다는 각오로 임하라”였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 반드시 인정을 받는다”는 신념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나은행 해운대지점장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영업을 위해 해운대 대청공원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등산객들에게 커피와 음료를 나눠주는 행사를 기획, 직원들과 뜻을 모았다.

토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지점에 모여 준비하고 난 후 대청공원 입구에서 잠재 고객인 시민들에게 커피와 요쿠르트, 생수를 나눠줬다.

많을 때는 1000명 이상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3개월째 되는 시기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을 지켜본 어느 대학 교수가 감동을 받았다는 편지를 은행장 앞으로 보내게 되는데 은행장이 지점 직원들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왔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해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여러분들께서 해내었다고 생각합니다”
백 대표는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다이닝센을 계속 운영하고 싶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저의 인생 2막과 부침을 함께한 다이닝센과 같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소외된 곳과 어려운 이웃들을 돌 볼 수 있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나선 거리는 세차게 내리는 비로 젖어있었다.

입지적인 금융맨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은퇴 후 요식업 대표로 인생 후반전을 멋지게 살고 백승헌 대표. 이제부터는 사회의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의 인생 3막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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