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연주자 모아 ‘집사(Zip4)’ 결성
뉴올리언스 재즈음악 재해석 관객 호응
전주 재즈페스티벌 등서 수준급 공연

6명 모두가 싱어송라이터 악보없이 연주
섭외 1순위 재즈밴드 명성 이끌어 내
서브컬처 음악에도 매료 대회 조직 구상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New Orleans)지역의 수준 높은 음악을 선보이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재즈밴드가 있다.
20대 연주자 6명으로 구성된 집사(Zip4).
이들은 미국 남부의 지역적 특색을 담고 있는 ‘New Orleans Jazz’를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성으로 재해석한 연주 실력을 뽐내며 국내를 대표하는 신세대 밴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중심에 리더 정우호(29)가 있다.
정우호는 뉴올리언즈 재즈의 진수를 국내에 알리는 색소폰 연주자로 각광을 받으며 동료들과 함께 ‘집사’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집사’는 섭외 1순위 재즈밴드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편집자 주〉

▲ 국내 몇 안되는 뉴올리언스 재즈밴드 '집사'의 리더 색소폰 연주자 정우호.

‘집사’를 이끌고 있는 정우호를 만난 건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약속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정우호.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가 인상적이다. 겉모습은 음악인이 아니라 아이돌을 보는 듯하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는 진동벨이 울린다. 그가 용수철 튀듯 카운터로 향한다. 예의 바른 행동에 다시 한번 “요즘 젊은이 같지 않네!”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가 목구멍을 넘기도 전, 근황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는 29일부터 사흘간 신촌 ‘연남5701’에서 열리는 특별한 연말 파티 준비에 정신이 없습니다. ‘집사’가 한 해 동안 성원해 주신 팬들과 재즈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음악과 춤, 즐거움을 선사하는 자리인 만큼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연말 파티에 대한 물음은 잠시 미루기로 하고 ‘집사’에 대해 물었다.
'집사(ZIP4)'는 미국 남부의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New Orleans Jazz에서 영감을 받아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6인조 재즈밴드입니다. 1917년에 최초로 녹음된 Original Dixieland Jazz Band를 시작으로 뉴올리언스 출신 음악가들인 Louis Armstrong, Louis Prima 등의 재즈, 스윙, 블루스 등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Pop까지 ‘집사’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관객들에게 그 시대의 음악을 직접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정우호와 집사의 인연에 대해 물었다.

다소 긴 대답이 돌아왔다.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정우호는 중학교 3학년 접어들면서 공부할 것인가 기술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둘 다 하고 싶지 않았고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게임과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진학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마침 부산예고에서 2년에 한 번씩 색소폰 전공자를 뽑는다는 정보를 듣고 벼락치기 공부를 시작했다.

입시를 얼마 남기지 않고 시작한 색소폰이었지만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색소폰을 즐겨 불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지만 타고난 재능과 천운으로 그는 원하던 학교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기쁨도 잠시, 어렵게 클래식을 전공하게 된 그는 난관에 부딪혔다. 클래식 음악에 있어 색소폰이 끼어들 수 있는 틈새가 적었다. 수업시간에 홀로 남겨진 그는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다가 부산공고로 학교를 옮겼다. 클래식은 비전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색소폰 연주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대학진학이 문제였다.

정우호는 콩쿨대회에 나가서 입상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6개월간 나갈 수 있는 대회는 다 나갔다.

매직이 또 통했다.

2013년 제40회 전국학생음악콩쿠르 관악 부문 고등부 1위를 차지하는 등 출전한 대회마다 상을 휩쓸었다. 20살 되던 해에 곧바로 입대해 해군 군악대에서 입시 준비를 했다. 선임과 후임의 도움으로 그는 인생의 전환을 맞게 된다.

2017년 드디어 그가 바라던 동아방송예술대 실용음악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매 학기 전문적인 교육 커리큘럼을 통해 앙상블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휴학을 하고 피아노와 하모니카, 플롯, 클라리넷 멸티악기와 작곡에 매력을 느껴 공부도 했지만, 자신은 연주자가 적성에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색소폰 연주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대학 졸업반 시기에 경기아트센터 연주자로 취직하는 행운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 상복도 터졌다.

2019년 열린 제5회 흥 페스티벌 신바람 퍼레이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듬해인 2020년에는 강원뮤직스타에서 밴드 부문 대상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졸업하고도 같은 직장에 다니던 정우호는 군대 선임인 남택윤(수자폰)과 학과 후배 송민섭(기타)을 만나 밴드를 결성했다. 처음 3명으로 시작한 집사는 이후 최영준(트럼본), 하종혁(드럼), 서효상(클라리넷)이 합류하면서 6명의 완전체를 이뤘다.

정우호는 목이 말랐는지 커피잔에 손을 얹는다.

한 모금 하기를 기다렸다가 또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도대체 왜 재즈인가.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좋단다.
“재즈를 좋아하는 건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음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재즈 사랑에 푹 빠져 있는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20대 중후반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집사’가 재즈를 알면 얼마나 아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간다.
“재즈 하면 흑인이 떠 오르고 중장년층의 음악쯤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을 거예요. 20대들이 연주하는 재즈는 분명 한계가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고 공부한 실험적인 재즈를 관객과 나눈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연주하는 재즈 음악은 지금도 농익고 숙성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음악의 깊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 이라고 믿고 저희 나이대에 맞는 매력을 찾아 순간순간 충실할 따름입니다”

똑 부러지는 대답이다.

이번에는 집사가 추구하는 뉴올리언스 재즈에 대한 물음이 이어졌다.

정우호는 간략한 대답을 내놓는다.
“미국 땅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항구 도시 뉴올리온즈는 재즈의 메카이자 고향으로 1890년대 흑인들로부터 새로운 연주 음악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트럼펫 연주자가 재즈를 미국의 국민음악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요. 흑인들의 절규와 원초적인 절망의 소리로 대변되는 재즈는 이후 블루스와 가스펠 등으로 발전했습니다.”

정우호의 ‘집사’는 뉴올리언스 음악을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로 재해석해 찬사를 받고 있다.

‘집사’가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전주 한옥마을에서 열린 제1회 전주재즈페스티벌에 참가 하면서부터다.

색소폰과 클라리넷, 트럼본 수자폰 등의 관악기와 기타, 드럼이 어우러진 집사의 연주는 공연장을 달구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관객은 완성도 높은 공연을 통해 미국 뉴올리언스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재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언론매체도 호평 일색이었다.

지난해(2023) 발매된 첫 정규앨범 ‘Put On A Tie’도 오늘의 ‘집사’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발매되자 호평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특유의 유쾌한 흥과 스윙감이 멋지게 표현된 곡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6명의 팀원이 작곡에 참여해 10곡 모두 색다른 감흥을 준다는 것이다.

첫 곡 ‘Put On A Tie’는 브라스로 시작하는 인트로는 마치 1920년대로 돌아간 듯 고전적인 색채 짙다. 무엇보다 기타리스트 송민섭이 직접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 팀원이 코러스를 넣은 부분은 압권이다.

연주만으로 진행되는 ‘Lake Lery’는 앨범의 에피타이저 같은 존재고 다음 곡인 ‘Pair Blues’부터 주요리에 해당된다. 아무튼, 앨범은 트레디셔널한 뉴올리언스 사운드와 그 가운데 세련되고 흥미로운 연주가 어우러져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집사’는 진주와 울산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재즈행사에 초청을 받아 무대에 오르며 결성 3년 차에 큰 결실을 맺었다.

정우호는 ‘집사’의 놀라운 성장에 대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얘기한다.
“정말 ‘집사’가 많은 팬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2022년 전주 재즈 페스티벌은 ‘집사’에게 있어 행운의 심벌입니다.”

너무 무거운 질문인가 싶어 이번에는 좋아하는 재즈곡과 뮤지션을 물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재즈곡은 너무 많아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뮤지션은 ‘패트릭 바틀리(Patrick Bartley)’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보다 한 살 많은 그의 연주는 제 연주를 바꾸었고 늘 가슴 뛰게 한답니다”

‘집사’의 강점 또는 매력은 무엇일까. 그때 정우호의 눈빛이 반짝인다.
“‘집사’는 많은 장점을 가진 팀입니다. 먼저 보컬이 따로 없고 6명 전원이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보 없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저희 팀의 강점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관객들과 즐기는 모습이 ‘집사’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묻는 김에 ‘집사’의 미래비전을 밝혀달라고 했다.
“올해는 팀원들과 함께 뉴올리언스에 가서 그곳의 음악과 문화를 오롯이 느끼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작곡과 기성곡으로 구성된 전통 재즈 앨범을 제작, 출시하는 것도 ‘집사’의 내년 계획입니다”

다시 ‘집사’ 리더 정우호에 집중.

리더 정우호는 젊지만, 음악적 경력은 상당하다.

우선 2018년 Mixnut 1st 싱글 ‘달’, 2021년 집사 싱글앨범 ‘방화수류’, 2022년 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그리고 2023년 집사(Zip4) 정규앨범 ‘Put on a Tie’ 등으로 활발한 앨범 활동을 보였다.

2022년에는 Jeonju FALLing in Jazz, KOREA FESTIVAL 2022in NAGOYA 아티스트로 참여하고, JAZZ NIGHT 아뜰리에 기획공연 아티스트로도 선정돼 국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23년에는 과천 공연 예술축제, 2nd Autumn LIVE jazz Festival with. 또모, ‘She Stars! ’ 창작뮤지컬, 제1회 아산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등에서도 맹활약했다.

정우호는 또 2018년 11번가 CF, 2019년 아웃백 CF에 연이어 출연하며 그의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줬다.
‘집사’ 정우호는 재즈에 이어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게임과 애니메이션 관련한 서브컬처 음악 도전에 나섰다.

지난 10월부터 국내 몇 안 되는 라이브 서브컬처 밴드 ‘가니메(Ganime)’의 연주자로 활동하며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는 서울을 중심으로 라이브와 유튜브 채널에서 경험을 쌓으며 국내외 서브컬처 페스티벌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재즈에 이어 서브컬처 음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정우호.

그의 꿈은 평범하면서도 소박하다.
“저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관객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좋아합니다. 한 분의 팬이라도 불러주시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서 ‘집사’의 멋진 재즈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열정과 관객들이 함께 어우러진 무대를 꾸미고 즐길 수 있는 그곳이 ‘집사’의 본향이자 안식처입니다”

인터뷰를 끝내려고 하자 정우호가 갑자기 할 말이 있단다.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집사의 연말파티에 보다 많은 분들이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날 그날 다른 주제로 열리는 공연은 올 한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인터뷰를 갈무리하고 돌아서는 젊은 재즈 연주자 정우호의 뒷모습에서 누군가가 떠오른다. 1920년대 최고의 코넷‧트럼펫 연주자로 유명세를 떨쳤던 20대 청년 루이 암스트롱의 모습이 말이다.

재즈를 전 세계인 좋아하는 팝음악으로 발전시켰던 루이 암스트롱이 그랬듯이 정우호와 ‘집사’도 먼 훗날 국내를 넘어 세계 재즈 음악을 이끄는 또 다른 재즈 전설로 남아주기를 기원해 본다.

다시 문을 열고 나선 거리에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다. 호소력 짙은 색소폰 연주가 가미된 재즈가 절로 생각나는 겨울밤이다.

▲ 섭외 1순위 재즈밴드 '집사'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은 좌로부터 기타 송민섭, 색소폰 정우호, 트럼본 최영준, 클라리넷 서효상, 드럼 하종혁, 수자폰 남택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