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능숙

싱싱한 생선은 어떤 요리를 해도 구미가 당기게 된다. 맛있게 먹을 요량으로 생선 손질을 서둘렀다. 한 무더기의 생선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고, 바닷물에 풀어놓으면 금방이라도 헤어나갈 듯 싱싱했다. 그 무리 중에서 유독 한 마리만 초라한 행색이었다.

그 생선은 뼈대 위에 거죽만 씌워 놓은 양 볼품이 없었다. 누가 덤으로 거저 준다더라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생선도 살이 통통하게 올라야 인물이 있어 보인다. 그래야만 값도 후하다. 앙상하게 뼈가 드러날 정도인데도 배는 유달리 볼록했다. 나는 그 생선의 배에 새끼가 가득 찼거나 알이 가득 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측은한 마음으로 생선의 배를 가르자 딱딱한 뭔가가 만져졌다. 내장에서 나온 것은 뜻밖에도 투명한 비닐 한 조각이었다. 새끼손가락만 할까. 그 자그마한 비닐 한 조각은 미끌미끌한 점액질에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온갖 먹이사슬로 차 있어야 할 생선의 대장大腸에 비닐 조각이라니.

비닐 한 조각을 소화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을 생선의 고통이 처절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무심코 버린 비닐 한 조각 때문에 생선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 먹은 죄로 불생불멸의 세월을 보냈을 생선을 생각하니 가슴이 막막해져 왔다.

야윈 생선 위로 친정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갑자기 저세상으로 떠난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어머니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지내야만 했다.

남의 시선이 두려워 가끔 절에 다녀오시는 것 외에는 두문불출했고, 식사도 일절 하지 못했다. 평생 오십 킬로를 넘지 못했던 어머니의 몸무게라지만 오빠의 죽음 이후 폐병 환자처럼 더 핼쑥했다. 저러다 큰일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이었다.

어머니에게 있어 오빠는 아버지와 다를 바 없이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아들, 딸 놓고 잘 살아가던 마흔이 넘은 자식, 평생 떨어져 살아본 일 없었던 아들을 하루아침에 영원히 떠나보내기란 생살을 도려내는 것보다 더 처절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꽁꽁 앓으면서도 어머니는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어머니의 체구는 연약했지만, 생활력만큼은 강인한 분이다.

어느 비가 오는 밤이었다. 뒤꼍에 돌아간 나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돌아앉은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늘 쓰고 다니던 수건에 얼굴을 묻고 통곡하고 있었다.

먼저 간 자식의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빗소리를 틈타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울음을 나는 차마 건드리지 못하고 돌아 나왔다. 빗소리는 한참이나 세차게 양철지붕을 두드렸다.

오빠의 죽음은 어머니나 우리에게는 크나큰 고통의 나날이었고, 아무리 애를 쓰도 소화되지 않는 비닐조각 같은 것이었다.

해변에 널 부려진 쓰레기 더미가 생각난다. 홍수가 나거나 장마가 이어져 물이 불어나면 산을 이루는 쓰레기 더미. 쓰레기 더미는 있는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가에 나온 것이 저만큼인데 바다나 강에 수장된 쓰레기는 얼마쯤일까를 짐작하면 아찔하다. 그것을 넙죽 먹은 죄로 고통스러워 할 생명이 무수할 것이다.

요즘은 변종 물고기나 조개류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반듯하게 자라야 할 생명이 양심이 없는 사람들로 인해 병들어 가고 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생선이나 조개류는 믿고 먹었다. 갯내 나는 것이라면 살균이라도 한 것 같아서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혹시 하는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은 나만의 기우는 아닐 것이다.

야윈 생선을 떠올리면 작은 껌 종이 하나라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 종이 하나에 누군가는 그것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여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죄를 짓는 행위다.

꼭 의도적인 범법 행위만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의 운명이 좌우되듯이 쓸모없는 비닐 한 조각도 함부로 버릴 일이 아님을 야윈 생선 한 마리가 법어처럼 일러주었다. 문현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