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일광

#1
1852년 2월 27일 새벽 2시,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HMS Birkenhead)'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날 무렵 암초에 부딪쳐 선체 바닥에 큰 구멍이 나고 배는 한쪽으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배에는 군인 472명과 가족 162명이 타고 있었다. 망망대해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상어떼들이 설치기 시작하자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배에는 구명보트가 세척이 있었으나 60명씩 겨우 180명밖에는 탈 수 없었다.

그때 장병들의 집합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고 잠에서 깨어난 장병들이 함장의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민간인들을 보트에 나누어 태웠다. 마지막 보트에는 18명이 더 탈 수 있었다. “자리가 남았으니 군인들도 어서 뛰어 내리시오‘하고 보트에 탄 사람이 소리쳤다.

그때 다시 북소리가 울리고 군인들은 갑판에 정렬했다. “부대 차려!” 함장 시드니 세튼 대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군인들은 부녀자들이 탄 구명보트가 떠날 때까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살겠다고 바다에 뛰어내려 저 보트를 타는 순간 대혼란이 일어나고 타고 있는 사람들까지 위험해진다. 우리는 국민을 지키는 군인이다. 지금 그 자리를 꼼짝 말고 지켜라” 472명의 군인들은 아무도 살겠다고 보트의 빈자리를 향해 뛰어내리지 않았고, 보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선장과 모든 장병들은 거수경례를 올린 채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배와 운명을 같이 했다.

#2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30분, 영국 화이트 스타 회사가 만든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Titanin)호가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부딪쳐 승선했던 2,208명 가운데 1,515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선장의 리더십을 보았다. 침몰 10분 전부터 악사들이 조용히 찬송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여자와 노인, 어린이를 구명보트에 태우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스미스 선장과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3
지난 16일 오전 8시 50분 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339명을 비롯하여 476명이 승선하여 174명(19일 12시 현재)만이 구조되는 안타까운 사건으로 온 국민이 슬퍼하고 있다.

특히 승무원 29명 23명이 구조되어 69%가 생존한데 비해, 단원고 학생들은 325명 중 75명, 겨우 23%만 구조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어떻게 선장과 승무원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해상사고가 나면 배에서 끝까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게 선장의 명예이며 자존심이다. 그런데도 승객으로 가장해서 먼저 탈출하여 담요로 몸을 가리고 구조된 사람처럼 신분을 위장하고 있는 모습에서 오히려 연민을 느끼게 한다.

지난 해 2012년 이탈리아 근해를 지나다 좌초해 17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실종된 콩코르디아호 선장은 배가 전복되는 아수라장 속에서 300명의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1등 탈출’한 죄로 이탈리아 검찰은 셰티노 선장에게 1인당 8년 정도 계산해서 총 2,697년의 형을 구형했다.

#4
세월호 참사로 잠시 주춤하지만 물밑으로는 지방선거에 나선 사람들의 선거운동이 활발하다. 이들은 다 우리들의 리더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다. 너도나도 주민들을 섬기면서 헌신과 봉사를 하겠다고 소리치고 다닌다. 나만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발전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이들 중에는 세월호의 선장처럼 위급한 상황이 되면 승객을 제쳐두고 제 목숨만 살겠다고 도망갈 리더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와 해경, 관계기관의 우왕좌왕,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체계 없고 믿음 없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리더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한심스럽다. 이번 선거에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거제문화예술창작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