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꽃으아리의 만개한 모습

꽃말은 누가 지었을까? 아마도 시인이 지었을 것이다. 시인은 전설에서 따왔을 것이다. 꽃말 역시 사회적 약속일진대 만인의 공감을 얻어 전설처럼 생겨났을 것이다.

모정처럼 희고 넓고 순박한 꽃, 언뜻 보면 풀(만초,蔓草) 같기도 하지만 실은 만경목(덩굴성 목본)이다. 서양에선 클레마티스(Lilac Clematis)라고 부르는데, clema는 그리스어로 '덩굴'이란 뜻.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이 변한 것이다.

이 꽃을 처음 본 것은 대운산 가는 마을 입구 과수원에서였다. 원추리로 뒤덮힌 무덤가의 진보랏빛 제비꽃을 정신없이 보고 있다, 동행한 벗이 환성과 함께 가리킨 울을 따라 커다랗고 새하얀 꽃이 피어 있어 깜짝 놀랐다. 도대체 저 꽃은 뭘까? 보일 듯 말듯 가느다란 줄기 끝에 매달린 커다란 꽃!

집으로 돌아와 풀꽃도감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풀이 아니고 나무였다. 그 뒤 삼동면 시냇가에서도 보았고, 이기대에서 오륙도 가는 갈맷길 계곡에서도 보았다. 며늘아기 상견례 때도 서울 도심에 이 꽃이 피어 있었다.

약재명은 비슷한 식물인 으아리와 사위질빵까지 합쳐 '위령선'으로 부른다. 풍습 이뇨 진통 류머티즘 신경통 등 응어리를 풀어주는 약초라 하여 응어리가 으아리로 전이됐다고들 한다. 지방에 따라 '응어리'라 부르는 곳도 있으며, 뿌리를 달여 먹으면 통증이 말끔히 사라져 '마음가리나물'이라고도 한다.

약효에 대한 당나라 학자 주군소(周君巢)의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 정도.

옛날 중국 하남성 상주(商州) 북우산에 금슬 좋은 부부가 살았대. 어느 날 남편이 밤늦도록 일을 하고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 집 앞 돌계단에 누워 그만 잠이 들었대. 아내가 늦게 마중 나오다 남편을 발견하고 깨웠으나 이미 남편은 중풍을 맞아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더래.

아내가 의원을 불러 10년 동안 정성스럽게 간호했지만 병은 점점 더 심해져 혼자서는 돌아눕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대. 아내는 남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끝에 남편이 누운 침대를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가에 내놓고 큰 소리로 외쳤대.

"누구든지 이 사람의 병을 고쳐주세요. 제발…"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혀를 끌끌 찼대. 그렇게 열흘이 지났을 때 지팡이를 짚고 보따리를 들러 맨 한 노인이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이 사람의 병은 풍습(風濕)으로 인한 중풍인데 내가 고칠 수 있소" 하더래.

그 길로 노인은 산으로 가서 어떤 덩굴의 뿌리를 캐서 술에 담갔다가 끓여서 환자에게 먹이고 또 가루를 내어 식초와 반죽하여 관절에 싸맸대. 며칠 안 되어 환자는 팔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몇 달 뒤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대. 남편의 병을 고치고 노인이 떠나려 할 때, 아내가 "어르신네! 남편의 병을 고쳐주셔서 고마워요.

이 신기한 약초의 이름을 가르쳐 주세요" 그러자 노인은 "이 약초는 본래 이름이 없으니 그냥 '위령선'이라고 하시오. 위(威)는 강하다는 뜻이고 영선(零仙)은 효력이 신선과 같이 영험하다는 뜻이지요"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대.

▲ 서양큰꽃으아리 - 클레마티스

큰꽃으아리는 꽃도 아름답지만 태풍의 눈처럼 달리는 열매 또한 신비롭다. 초애원의 큰꽃으아리 씨를 처음 본 이옥진 시조시인은 '사랑하려면 큰꽃으아리 만큼 하여라'란 시조를 썼다. <으아, 가는 줄기 버티기도 힘들텐데/저 하늘 덮을 만큼/그리움 그리 키우며//순백의 맑은 눈빛으로/그렇게 빛나더니//한 순간 자지러지며 가버린 그 자리에/뱅글뱅글 초록실뭉치/으아, 더 큰 사랑으로//내 안에 맴돌고 있구나/가물가물 혼절할 듯>.

필자도 시를 썼다. <삶의 보따리/한 짐 지고//그대/무슨 꿈 꾸시는가//꽃 피우는 긴 긴 여정은/눈부시고도 강렬하다//그대 꾸는 꿈/달빛 아래 벙그는/큰꽃으아리//그대 이룬 꿈/누군가의 꿈이 되어//마음 속 샛별인양/해맑게 떠오르리//그대/고단한 꿈꾸는 자여- 拙詩 '큰꽃으아리' 전문>.

우리 모두 삶의 보따리 무겁게 지고 꿈을 향해 나아간다. 꿈을 이루어나가는 여정은 치열한 것, 시인의 꿈도 마찬가지다. 달밤에 피는 큰꽃으아리. 가장 가녀린 몸에서 가장 커다란 꽃을 피우는 넝쿨 야생화. 삶의 보따리가 크다. 꽃이 지면 황금빛 소용돌이 씨앗도 달린다. 내 이룬 꿈 누군가에게 꿈이 될 터이니, 꿈을 품고 살아야 할 터. 마음에 큰 깨달음의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큰꽃으아리 역시 다른 꽃들처럼 반만 피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 묘령의 아가씨가 제일 예쁘듯. 그래서 '큰꽃으아리 한 송이 흰금낭화 네 송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오늘 아침/문득 큰꽃으아리가/연둣빛 아련한 꽃을 피웠다/슬퍼하지 말라/힘들어 하지도 말라/화를 품지도 말라/그리고 힘껏 사랑하라/으아리 으아리 큰꽃으아리/실낱같은 넌출에서/어쩌면 그리도 큰/얼굴의 꽃이 나올까/희고 달덩이 같은 모습/멀리서도 잘 보인다네/으아리 으아리 큰꽃으아리/으아리 으아리 큰꽃으아리/어쩌면 이름도 그리 예쁠까>

벗이여, 오륙도 갈맷길을 걷다 혹여 이 꽃을 보시거들랑 따스한 눈길 한 번 보내주시게나. 어쩌면 그렇게도 정갈하고 멋들어진 꽃을 피워 고결한 빛을 뿜어내는지 물어보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시 한 수 선사하시게나. 아니면 노래 한 소절도 좋고. 그대 가슴에 커다란 꽃 한 송이 큰꽃으아리로 피워 보게나. 미래의 과거가 될 현재를 큰 팔 벌려 한 번 안아보시게나.

▲ 김종화 시인

글쓴이 김종화 시인은 남촌문학관장으로
남구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간 자생식물연구가로 활동하며
들꽃정원 초애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흰금낭화 같은 그대」
「田園」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