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정 소설가

우리는 지금 너무나 아름다운 속물성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아름답다 못해서 동물적 본능으로 돌아간 시대라고 하면 극단일까.

죽어가는 친구를 위하여, 치매 걸린 부모님을 위해서 기꺼이 병원이나 요양원을 안내하는, 진정성을 잃어버린 시대를 누구나 공존한다.

잘 먹고 잘 죽어가기 위하여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모든 것을 과감히 차단할 수 있는 ‘우리’라는 공감대가 있기에 더는 양심의 갈등을 상실했다. 그러나 현대인은 여전히 불안하다. 아무리 꾸미고 물질로 문화로 잡식성을 드러내며 소유를 해도 불안과의 동거는 여전하다.

나들이 길이 죽음의 문턱이 되거나 군에 간 아들이 맞아죽어서 돌아오는 시대를 살며 우리의 영혼은 떠돈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기계의 도움으로 하루치의 불안을 날품으로 받아먹는다.

사람과 마주 앉은 오프라인에서도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답이 없는 카톡이나 메시지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온라인의 장치 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도 기계와 연결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이 좌절한 시대의 정서적 허기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밥그릇의 허기가 아닌 영혼의 갈증과 불안을 잠재우게 할 것들을 찾아보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지나온 시간 속의 추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현재는 소설보다 더 극적인 일들로 채우져 가기에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아무도 없는 늦은 밤의 지하철에서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 우리는 기억 여행을 하게 된다. 유년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시간의 그림은 따스한 온기를 전해준다.

육체는 허기졌지만 그래도 집으로 달려가면 반겨줄 어머니와 할머니의 잔잔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우리를 인간으로 보듬어 주었던 시대의 풍경을 더듬으며 비로소 한 마리 순한 짐승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랫목에서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잠들던 날은 꿈마저도 순하고 여리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할머니들은 모두 양로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가거나 바쁘다.

아이들도 모두 학원의 콘크리트 벽장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인가. 문명의 꽃인 정보화의 시대를 채 누리기도 전에 21세기는 벌써 이야기와 감성에 목말라 한다. 냉장고를 팔아도 명화를 넣고 그 이야기처럼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때, 사람들은 움직인다.

이러한 시대에 인간의 허기를 달래주고 선한 인간으로 돌려줄 것들은 무엇일까. 대안을 찾으라면 아마도 문학이 아닐까 싶다.

일찍이 20세기 말에 문학의 종언을 예언했건만 아직도 문학은 유효하다. 과거의 영웅이나 임금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소한 사연을 통해 잃어버린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학은 더 낮아지고 더 작아지고 더 사소한 이야기로 현대인을 잠시 멈추어 쉬게 해준다. 글은 독자가 읽음으로서 완성되듯이 누군가의 사소함이 모두의 아픔이 되도록 이 시대를 함께 아파하는 인간의 육성을 담기에 어쩌면 문학은 아직도 유효한 명제일 것이다.

기꺼이 인간을 영혼의 공복으로부터 구출하는 문학은 알 수 없는 불안과 허기진 갈증의 시대에 인간의 언어로 흘러 보내버릴 이 순간들을 문학이라는 냉장고에 넣어서 영원히 썩지 않게 담아낸다.
'
안네의 일기'가 그 어떤 기자의 기록보다 나치를 알리는데 큰일을 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안네의 사소한 이야기가 유태인 모두의 삶이었듯이 문학은 언어를 통해 누군가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만져지게 하고 통성하게 만들며 읽는 행위만으로도 내 안의 상처 입은 영혼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내 안의 거울을 보면서 웅크리고 병든 나를 만날 때 모두들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고통과 소통하는 자신을 만난다. 그렇게 삶이라는 괴물이 잠식해버린 오늘 의 인간에게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한편 글에서 우리는 역사를 읽고, 삶을 읽고, 그런가 하면 인생을 읽어낸다.

글을 쓰는 동안 작가도 변하가겠지만, 읽는 독자도 바뀌어간다. 글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는 세상을 움직인다는 뜻과도 통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다보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날마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순수한 존재를 경험하듯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인생 전반의 모호하고 불안한 허기를 메워줄 대안을 문학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문학박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