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기용 문학평론가

고전을 읽자! 미래를 향한 새로운 문화 창조의 답이 고전에 있다. 이렇게 주장한다면 무리일까?

한때 고소설을 변형한 영화 제작이 유행했다. 고소설 『춘향전』이 영화 <춘향전>과 <방자전>, ‘아랑각’ 전설과 고소설 『장화홍련전』이 영화 <장화, 홍련>, 고소설 『전우치전』이 영화 <전우치> 등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것은 고전이 원소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음의 증거이기도 하다.

고전의 한 작품을 원천으로 삼아 여러 가지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것을 ‘원소스 멀티유즈’라고 한다. 그 대표적 예가 고소설 『심청전』이다. 실명(失明)과 광명(光明) 모티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깊은 사고를 하는 우리 인간은 실명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의식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세계적으로 실명 모티프가 나타난 작품은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 작품에서 대표적인 작품만을 언급해 보면, 고소설 『심청전』,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우리 전통적인 한의 표상임과 동시에 비극적 한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영화 <서편제>는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와 「소리의 빛」을 변용하여 영화화하였다. 원작을 수정·변형·삭제·추가하여 예술성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애쓴 작품이다.

영화는 원작과 많은 차이점이 있다. ①소설에서는 송화가 동호의 여동생이지만, 영화에서는 누나로 등장하고, ②소설에서 송화는 처녀로 암시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딸까지 둔 유부녀이고, ③송화의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은 소설에서는 아버지가 잠자고 있는 딸의 눈에 청산가리를 찍지만, 영화에서는 한약을 먹인다. 그리고 ④소설에서는 오누이가 만나지 못하지만, 영화에서는 만난다는 차이점을 보여 주고 있다.

원작과 영화의 공통점은 ‘소리(청각)’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시각’을 죽이고야 마는 비극적인 한의 구조이다. 영화에서 송화의 완성된 <심청가>의 소리는 우리 전통적 한의 표출이자 한의 삭임으로 승화한다.

고소설 『심청전』은 우리식 실명 모티프의 표상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고소설 중에서 유일한 실명 모티프 소설이다.

달리 보면, 초극의 광명 모티프이기도 하다. 지금도 변함없이 감동을 자아내고,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변형한 소설은 물론이고, 재생산하거나 패러디한 예술 작품(영화, 연극, 뮤지컬, 만화 등)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탄생하였다. 그야말로 ‘원소스멀티유즈’이다.

고소설 『심청전』의 실명 모티프를 변용한 작품의 일부와 비교해 보면, 고소설의 비합리적 내용을 삭제하고 새롭게 합리적 내용으로 변형한 작가 미상의 『몽금도전』(1916)이라는 딱지본이 있다.

고소설과 차이점은, ①심청이 용궁에 다녀온 부분을 현실이 아닌 꿈으로, ②심 봉사가 눈을 뜨고 광명을 찾는 부분을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하는 것으로 변형하였다. 또한, 고소설 『심청전』을 변형한 작품 중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 구조처럼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하는 모티프로 변형한 채만식의 『심봉사』(1936)라는 희곡이 있다.

고소설과 차이점은, ①심청이 물에 빠져 영원히 살아오지 못하는 것으로, ②심 봉사가 눈을 뜨지만,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책감에 스스로 눈을 찔러 영원히 실명하는 것으로 변형하였다. 이것도 비극적인 한의 구조이다.

이처럼 고소설 『심청전』이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실명 모티프 못지않게 풍부한 상상력과 끈질긴 생명력으로 재생산되어 왔다.

앞으로도 비극적 한의 구조와 실명 모티프의 표상인 『심청전』에 근원을 둔 예술 작품이 꾸준히 재탄생할 것이다.

몇 세기 동안 문화콘텐츠의 원소스로서 꾸준히 생명력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장담도 해본다. 이는 우리의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풍요롭게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결국, 미래의 답은 고전에 있다.
고전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미래를 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