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철훈

부산에서 66년을 그것도 남구 문현 1,2,3동에서 60년을 살았다.

오죽이나 못났으면 평생 곁눈질 한번 하지 못하고 한 동네에서만 이토록 오래 살았으니 남들이 보기에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특히 남들은 이 집 팔고 저 집, 저 집 팔고 이 집해 가며 부를 축적하고 큰소리도 치면서 살아왔다고 자랑도 하더라만 남들은 쉽게 하는 그 흔한 재주 한번 못 부려 보았으니 참 별 볼일 없는 세월을 살지 않았나 싶다. 하기야 살다 보면 금전적인 부와 이기적인 생각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세상이 각박해지고 어려워질수록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하나 되어 아픈 곳을 만져 주고 가려운 곳은 긁어 주는 신뢰 형성이 바탕이 될 때 삶의 질이 높아지고 살만한 사회가 이루어지리라 믿는다면 이 또한 나만의 착각일까?

특히 지방자치제가 성숙 되어 가는 특성을 고려할 때 官, 民의 화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밝고 건강한 사회가 형성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부끄러운 이야기 한 가지해야겠다. 얼마 전 아 글쎄, 서류 봉투 두 장이 필요해서 문방구에 사러 갔더니 팔지 않아 주민자치센터에 가서 부탁을 해보자 하고 갔더니, 매몰차게 줄 수 없다면서 훑어보는 눈길이 황당하더이다.

옷이라도 고급스럽게 입고 좀은 있는 사람 행색이었으면, 아니면 자생단체 감투라도 명함에 새기고 다니는 주민이 부탁을 했어도 그랬을까? 그래도 주민인데 대하는 행동이 말할 수 없이 불손하더이다.

요즘 민선 시절이라 어느 관공서를 가더라도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민원인이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라는데, 도대체 문현동 관리들은 민원인을 대하는 기본도 모른단 말인가. 상급기관에서도 이런 현실을 아는지 의문스럽다. 참 기가 막힐 일이다.

모른 척 넘어가려고 했지만 혹여 다른 주민들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정말 여만여만, 여차여차 하다고 말해 주었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오히려 미안해했을 텐데,

오래 전에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잡은 고기 반 마리를 동네 관리에게 갖다드렸더니 그 관리 왈 “내가 이 물고기를 받아먹는다면 내 평생 먹을 고기를 잃게 되니 받을 수 없습니다” 하면서 거절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찌 보면 앞뒤가 꽉 막힌 융통성 없는 공복의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선비들의 생활상이 그러했다면 나무랄 수도 없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두고 청백리라고 칭송하던 시절이였으니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처럼 청백리라는 말이 옛날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우둔한 민초의 생각과는 달리 정말 요즘 현실에서 보기 드문 청백리를 만났다면 누가 믿어 줄까?

요즘의 공무원들을 옛날 선비와 같은 반열에 둘 수 없으니까. 봉투 두 장 줄 수 없다는 공복의 매몰참이 바로 청백리의 표상이라면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 초라해지는 것 같다.

작게는 좀 심하다 싶은 일이였지만, 대승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니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서 공무에 쓰는 봉투를 달라고 했으니 그 또한 잘한 일은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봉투 두 장을 공무원 아닌 개인은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청백리가 주민의 행정을 맡고 있는 문현동 주민은 정말 복되고 복되도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공복의 행동은 구민의 절대적인 지지로 당선 되신 민선 구청장께서 확실하게 직원 관리를 한 결과의 산물인 모양이다. 이런 관리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럽고 추한 행동을 하지 않는 다는 보장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지만,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길을 밟아 가더라도 함부로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밟고 지난 발자국이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될지니)

위 시는 조선조 중반 ‘이양연’ 시인이 남겨 주신 금과옥조 같은 시다.

이 시를 서재 칠판에 적어 놓고 들며 날며 하루에도 수십 번 마르고 닳도록 머릿속에 새겼다. 아마 공직 생활을 했다면 바보 멍충이는 내 스승이 되었을 것이다.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 국회의원, 지자체장 및 구, 시의원 선거를 필두로 자고 깨면 들려오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 눈감고 귀 막고 싶은 일들이 민초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슬픈 일들로 점철된 한 해였다.
마지막 남은 날들이라도 정말 크게 파안대소할 수 있는 일들만 가득 했으면 좋겠다.
시인·'문장21'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