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세 만학도 대연3동 장영애 할머니가 대학 교재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장 할머니는 올해 부산여대 사회복지계열에 입학해 평생소원을 이뤘다.

78세 때부터 한글 익히기 시작
여대 사회복지계열 당당히 입학
노인돌보는 노노케어 사업이 ‘꿈’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대학에 입학한 만학도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남구 대연3동에 살고 있는 장영애(85) 할머니는 올해 부산여대 사회복지계열에 입학, 약관의 젊은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됐다.

지난 1일 집에서 만난 장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 환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다과를 권하는 모습은 여느 할머니와 다르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학진학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장 할머니의 대답은 주저함이 없었다.

“못 배운 게 천추의 한이었습니다. 불행한 시기에 태어난 우리 세대가 모두 그렇듯이 배움의 기회를 놓쳐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지요. 대학에 가서 젊은이들과 원 없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장 할머니는 4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장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특히 취학연령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갈 수 없을 때 엄청난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8살 어린 나이지만 학교 가고 싶어서 어머니께 떼를 써보기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새끼를 꼬아 쌀가마를 만들어 내다팔면 학비를 모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사리손으로 새끼를 꼬기까지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배우겠다는 의지가 대단했었던 것 같아요”

장 할머니가 처음 배움의 기회를 잡은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2살 때였다. 개성으로 이사를 온 할머니는 전라도 유지들이 뜻을 모아 공회당에 세운 배움터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일제시대 이어서 일본어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이듬해에 해방이 되면서 할머니는 보통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조카에게 배움의 기회를 양보해야만 했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장 할머니는 18살 되던 해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6.25전쟁이 발발하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월남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을 때 시부모의 권유로 남편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여정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발각돼 총알 세례를 받은 때도 있었다. 동료들이 눈앞에서 목숨을 잃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세번의 시도 끝에 겨우 강화도 인근 교동에 안착한 할머니는 수소문 끝에 남편을 만날 수 있었고 서울과 인천에서 새삶을 꾸렸다.

50여 년 전 동국제강 창단멤버인 남편을 따라 부산 대연동으로 이주한 할머니는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시장 좌판을 펼치는 등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1984년 장녀(송순임 전 부산시의원)가 유치원을 개원하면서부터는 원내 청소 등 궂은일을 도맡아 왔다.

장 할머니가 또 다시 향학열을 불태우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었다. 오랫동안 몸을 아끼지 않고 일만 해온 탓에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자녀들의 권유로 생활일선에서 물러섰다.

장 할머니는 이때부터 한 의사 부인이 운영하는 문해교실(한글교실)을 찾아 한글을 깨치기 시작했다. 2년간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는 열성을 보인 끝에 수석으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우연히 전단지를 보고 금정구에 있는 예원여중고를 찾았다. 여기서도 특유의 뚝심과 끈기로 4년간을 노력한 결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동안 만학도로서 어려움도 적지 않았을 터. 국어와 국사 등은 수월한 반면 영어와 수학 등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방과 후에는 자녀와 손자소녀에게 물어가며 배우고 또 배웠다. 때로는 새벽까지 과제를 위해 책상을 지켜야 했다. 이메일을 통해 과제를 제출하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감각도 익혔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장녀 송순임 씨는 공부하는 어머니가 존경스럽다고.

“어머니는 우리 자녀들에게 항상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시는 모습은 저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그동안 배우면서 힘들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장 할머니는 대답은 신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힘들긴 뭐가 힘들어요. 배운다는 것만큼 기분 좋고 들뜨게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중학교 과정을 마치면 고등학교 과정이 궁금하고 또 대학공부도 하고 싶더라구요. 여하튼 공부는 재미있고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래희망을 물었다.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와 같이 배움의 시기를 놓쳐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50대 젊은 사람들도 있구요. 교회 등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학교에 등록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아교육과 복지 관련 공부를 열심히 해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 사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어느 젊은 수험생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세간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장 할머니에게 있어 공부는 신앙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간절하고 소중하다.

85세 나이를 잊고 인생 100세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장 할머니의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